봉하마을에 세워질 작은 비석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9.05.28 08:28

[김준형의 뉴욕리포트]

끊어져 강물로 떨어진 성수대교, 폭격맞은 듯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
10여년 전 이곳 뉴욕에 있으면서 CNN화면을 통해 지켜봤던 고국 소식은 꿈인양 아득했다. 우린 언제까지 이런 압축성장의 어처구니 없는 상처를 겪어야 하는가 싶었다.

이번엔 건물과 다리가 아니라 사람의 애간장이 끊어지고 가슴이 철렁 무너졌다.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마저도 '압축 성장'을 해야 했던 우리에게 이번엔 전직 대통령이 절벽에서 몸을 날리는 깊은 상처가 패였다.

'자리에서 물러난지 1년반도 안된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코리아 타운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는 동포들의 심경은 참담하다.

곧바로 터진 북한 핵문제에 남한 전직 대통령의 자살소식은 이미 미국등 외국 언론들이나 일반인의 관심사에서 빠르게 묻혀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의 가슴에서 미친 충격은 20킬로톤급 핵실험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멀리 있어도, 굳이 입밖에 내지 않아도, 그가 죽음을 택하게 된 '분노, 수치, 책임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감정의 편린만을 실어 빛바랜 신문철 속에 그를 조용히 묻고 돌아서고자 하는 것은 공허하고 비겁하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겐 '브레이크'일수 밖에 없다.
무엇이 우릴 이곳에까지 끌고 왔는지,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전환표지이다.


돌이켜보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익숙했던 행태들이 어느덧 다시 우리 곁에 이렇게 가까이 와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됐던게 기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24일자 기사에서 "대중들의 분노의 초점은 청와대와 대검찰청의 음습한 연대(murky ties)에 맞춰지고 있다"고 표현한 것도 과거 민주화시대 이전 유산의 재부상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권위주의의 급격한 재부상이 우리 사회가 몇년간 이뤄낸 의미 있는 진보마저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는 건 아닌지...이어지는 국민들의 조문과 그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우리 사회 리더들도 분향을 통해 숙연하게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봉하마을 주변의 일부 사람들이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누구의 분향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주변에서조차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한 구시대의 부패 관행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 못할 정도로 재단했던 도덕성의 높은 잣대는 그의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 살아남은 우리 누구에게나 버거운 부담이 될 것이다.

세월이 지나 끊어진 다리가 이어지고, 무너진 돌더미 위에 새 건물이 올라서 상처가 아물어갔듯, 그가 남긴 과제를 머리 맞대고 풀어 나가는게 압축 민주화의 상흔을 치유하는 빠른 길일 것이다.

그런 과정을 '정치'라고 부른다면 그도 자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기꺼이 동의하지 않을까.

훗날 봉하마을 어귀에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에는 권력형 부패가 사라졌고, 사람들간의 증오와 정파간의 보복도 자취를 감췄다"는 비문이 새겨진 조그만 비석 하나를 더 세우게 될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영정속 사진처럼 그가 늘 웃는 모습으로 국민들 가슴속에 남아 있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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