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간 노무현과 담배 한 개비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9.05.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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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쯤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 행사를 치르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당시 고인은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였지만 입지는 초라했다.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한창 뜨고 있던 정몽준 의원에 밀려 당내 입지도 추락할대로 추락했다. 그래서인지 대선 후보가 방문했는데도 행사에 참여한 광주 지역 현역 의원은 거의 없었고 행사는 시들하게 막을 내렸다.



고인은 참석자들이 모두 떠난 텅 빈 단상 의자에 맥이 풀린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행사 취재 후 단상 앞을 지나던 기자를 불렀다.

"혹시 담배 가지고 있나요"



담배 한 개비를 건네자 고인은 묵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너무도 가라앉은 분위기 탓에 기자는 함께 담배를 피우며 "힘드시죠"라는 말 밖에 건넬 수 없었다. '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고인과 관련된 기사를 작성할 때면 그 때 그 담배 한 개비가 절로 연상되곤 했다. 담배를 끊었다던 고인이 대통령 재직 시절에도 힘들 때면 가끔씩 담배를 찾아 물었다는 소식도 접했다.

고인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담배를 찾았다고 한다. 불행히도 동행한 경호과장이 담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고인은 담배를 가져오려는 경호과장에게 "됐다"고 하고는 굴곡진 세상과 작별했다.


무슨 의식을 치르듯 한 개비 담배를 피우며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정리하려 했던 걸까. 담배를 피웠다면 혹시 생각이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소원으로 담배를 찾은 고인의 심경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담배를 피워본 사람은 안다. 무엇보다 절실히 담배를 필요로 하지만 담배가 없을 때의 풀리지 않는 갈증과 답답함을.

고인의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선택에 대한 정치·사회적 평가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안타까움과 허망함을 느낀다. 마음으로나마 고인의 봉하마을 영전에 담배 한 개비를 바친다.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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