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축제, 두 번 속은 미국의 새출발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9.01.19 13:08

[김준형의 뉴욕리포트]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으로부터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내셔널 몰에는 200만개가 넘는 눈동자가 한 사람을 주목할 것이다. 미 44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될 이 곳에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수십억명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 할 것이다.
일요일인 18일부터 이미 취임 축하 행사들이 시작돼 워싱턴을 중심으로 미국은 '오바마 축제'에 접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취임은 역대 어느 나라, 어느 대통령 취임과도 비교할수 없는 '블록버스터' 흥행요인을 갖추고 있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될 버락 오바마가 내놓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은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다.
46년전 바로 그 자리에서 "I have a dream"을 외쳤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1월 세째주 월요일)은 짜놓기라도 한듯 취임식 전날에 맞춰져 있다.

'감동 드라마'답게 사전 행사때부터 일찌감치 길거리에서 눈시울을 적시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이들도 물론 '오바마=만병통치약'일수 없다는 건 알 것이다. 벌써부터 오바마 당선자의 정책과 인선에 대한 논쟁도 없지 않다. 오바마가 4년뒤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의문부호에도 불구하고 '20일 낮 12시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이 시간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직함 앞에 '전(前)'이라는 글자가 붙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통과의례로 우리는 지난주 내내 부시 대통령의 '고별사를 들어줘야 했다.
백악관 고별 기자회견, CNN 래리 킹과의 인터뷰, 대국민 고별성명이 이어졌다.

그는 "양심에 따라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임기 말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재임중 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미국은 9.11이후 한번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자기를 '저평가(underestimate)'했다는 불만을 자주 했고, 오바마에게는 여전히 국가안보가 경제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훈수했다.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테러용의자에 대한 불법고문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서는 '실망스럽다(disappointed)'고 했다.

얼굴에 정통으로 날아드는 신발을 두번이나 피하는 순발력과, 그 신발 크기가 10인치였다고 웃어 넘기는 여유와 유머감각은 고별사에서도 빛을 발하며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기업 스캔들은 어느때보다 많았지만)성추문 같은 것 없이, 기독교적 사명감으로 국가를 위해 살아온 선의를 반박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8년간 그가 휘둘렀던 '악'의 잣대, 그의 주변에 머물렀던 특권층들에 의해 유보되고 희생됐던 많은 것들은 '실망스럽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크다.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던날, 마이클 무어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911 마지막 장면을 인용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이전 칼럼:미 대선, "한번 속지 두번 속나")


# "The fooled may not get fooled again(한번 속지 두번 속나)"
어디선가 연설을 하고 있는 부시대통령의 말이다.
무어감독은 "for once we agreed(그말 딱 하나는 부시 말이 맞다)"며 두번 속지 말자고 '선동'했지만 미국인들은 기꺼이 부시를 또 선택했다.
이후의 4년은 미국인들이 '두번 속은 바보'라는걸 증명하기에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대량 살상무기를 제거한다고 시작했다가, 사담 후세인을 없애는 것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던 이라크전쟁은 미군 사망자가 4228명을 넘어선 오늘도 진행중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시작된 아프카니스탄 전쟁도 희생자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빈 라덴은 잊을만하면 나타나 부시를 조롱했다.
'테러범'으로 의심받는 아랍인들은 재판도 받지 않고 물고문(부시 정부 용어로는 'Water boarding')을 당하며 수년동안 갇혀있다.

전쟁비용은 끝없이 늘어나는데 소득세 최고 세율을 2000년 39.6%에서 35%로 줄이는 등 부유층 감세정책으로 빚더미만 산더미가 됐다.
뉴욕 맨해튼의 '국가부채 시계'는 자릿수가 부족해서 맨 앞의 달러($) 표시를 1자로 고치는 편법으로 19일 현재 10조6000억달러(1인당 3만4824달러)를 넘어선 미국의 빚을 표시하고 있다.

↑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설치돼 있는 '국가부채 시계(National debt clock)'. 지난해 10월 1조달러가 넘어간 직후의 모습. 맨앞의 1자는 원래 $가 표시돼 있던 칸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2000년 1710만개에서 작년말 1300만개로 줄었고, 작년 한해만 290만개가 사라졌다. 의료보험 혜택을 못받는 사람의 비율은 13.7%에서 15.3%로 늘었다.

자유주의 신념에 따라 월가가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 탐욕을 채우는 것을 방조한 결과 사상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 지금도 연준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무한정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이 정도면 다시 한 번 이전 칼럼을 '재활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잘못된 국가운영을 하는 나라가 찾는 만병통치약은 통화증발과 전쟁이다. 두가지 모두 일시적으로는 번영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모두 영원한 파멸로 이어진다. 정치적인 또 경제적인 기회주의자들이 찾는 피난처가 바로 이 두가지이다"

취임하는 오바마와, 두번 속았던 미국인들, 더불어 피곤해야 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함께 기억했으면 싶은 헤밍웨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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