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4.11.0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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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조지 더브야 부시가 다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모양입니다.
오후 3시30분 현재 부시대통령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266석. 케리후보는 4년전 대통령자리에 막 앉으려던 앨 고어를 결정타 한방으로 날려버린 쨉 부시가 주지사로 버티고 서 형을 밀어준 플로리다주를 탈환하는데 실패했고, 접전지 오하이오에서도 끌려가고 있으니 한마디로 '게임 끝'입니다.

저는 지금 편집국 책상에서 내일마감인 머니북스 기사를 준비하며 TV를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책은 짐 로저스의 '어드밴처 캐피탈리스트'입니다. 벤츠를 타고 미인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닌 '월가의 인디애나 존스'이야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로 쓰기로 하고, 미 대선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눈에 띄는군요.



"잘못된 국가운영을 하는 나라가 처음에 찾는 만병통치약은 통화증발이다. 두번째는 전쟁이다. 두가지 모두 일시적으로는 번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영원한 파멸로 이어진다. 정치적인 또 경제적인 기회주의자들이 찾는 피난처가 바로 이 두가지이다" 헤밍웨이가 한 말입니다.

부시정부는 2001년 미국 건국 이래 가장 높은 통화 공급증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통화공급을 확대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등을 이유로 재정지출도 엄청나게 늘렸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다는 것이었던가, 사담 후세인을 축출해 이라크인들에게 민주주의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던가...아니, 대량살상무기 어쩌고 였던것 같기도 하군요) 이라크를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헤밍웨이가 맞다면 미국인들은 잘못된 국가운영을 해왔고, 영원한 파멸을 불러올 지도자를 다시 한번 뽑는 셈입니다.

물론 미 공화당과 민주당 정책의 차별성이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있을수 있고, '케리=善'이라는 등식도 성립되는건 아닐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부시가 재선되는걸 쳐다보고 있기가 착잡합니다. 기사 마감시간도 있고, 이 게시판에 정치경제 분석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건 생략하고...

개표방송을 보면서 '미국=세계'라는 오만에 빠져 귀를 닫고 사는 미국인들을 생각해봅니다.
오전에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재선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였다는 외신 기사를 읽었습니다. 심지어, 친 부시 노선이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오자 '부시의 애완견'으로 조롱받던 블레어총리마저도 은근히 케리의 당선을 바란다는 분석도 있더군요.


미국 내에서도 조지 소로스같은 '돈놀이꾼'까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부시재선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어드밴처..'를 쓴 짐 로저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네스 펠트로나 마돈나, 레오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헬렌 헌트, 나탈리 포트만, 빌리 크리스탈, 벤 에플릭, 마틴 쉰 같은 스타들이 죄다 'STOP BUSH'피켓을 높이 들었습니다. (앗, 또다른 배우들, 아놀드 슈워제네거, 찰튼 헤스튼, 멜 깁슨, 브루스 윌리스는 부시를 지지하는군요. 공통점은? 전쟁영웅 단골배역. 연기가 신념으로 굳어진 듯...)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본 미국의 표심이 미국 안팎의 '분위기'하고는 딴판인건 '애국주의'로 뭉쳐사는 우물안 개구리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있을때 미국인 여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남의 나라인 미국이나 유럽 역사를 잘 알고 있느냐"는 감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자기 동네' 이야기가 아니면 별 관심들이 없습니다. 명색이 세계적 언론이라는 뉴욕타임즈, LA타임즈 같은 신문들(따지고보면 지방지죠)의 1면도 '동네'이야기가 많고, 국제면기사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네 아들딸들이 총들고 '악의 축'과 맞서 보초서고 있는 한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어디 붙어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여전히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케리가 이긴 동네(TV화면에 파란색으로 나타나는군요)가 뉴욕 LA 시카고를 중심으로 비교적 세계적으로 놀면서 미국을 이끌어가는 세 축과 일치하는데 비해 부시가 이긴 동네(빨간색) 그 세 축을 둘러싼 '전원마을'들인게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화면상으로 광활한 빨간색 땅덩어리에 둘러싸여 파란색 '거점'들이 고립돼 있군요)

더구나 소련까지 사라져 거리낄게 없어진 마당에서 자신들 뜻대로 움직여주는 세상을 맘껏 누리며 살다보니 미국인들은 나머지 세상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고를 갖게 됐다는 생각입니다.

-방금 집사람 전화가 왔군요. "집 앞 공원에서 아이들 데리고 놀다보니 할아버지들이 공원매점에서 삼삼오오 미국 대선 TV개표방송을 보면서 미국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있더라"며 누가 됐느냐고 물어봅니다. 부시라고 이야기해줬죠. 지구반대편 서울의 한 귀퉁이 공원에서 장기두는 할아버지들이 미국의 대선결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세계와 우리의 장래를 걱정할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글로벌화 돼 있습니다. 미국인들과는 수준이 다르죠-

아무튼 "세상아 짖어라, 우리는 부시를 찍는다..."이게 근 52%라는게 현실입니다.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그런건 내버려둔다쳐도, 미국인들은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으로 자신들 주머니가 새고 있는 것도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더 안전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적들만 하나둘 늘어가는데요. 문제는 미국인들만의 주머니, 미국인들만의 안전이 걸린 선거가 아니라는 거죠.

4년전부터 '부시 킬러'를 자임하고 나선 마이클 무어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911' 마지막 장면을 안 떠올릴수가 없군요.

#어디선가 공식 연설을 하고 있는 부시대통령, 특유의 우물우물 발음(알아듣기 무척 힘들어서 한번 더 비디오를 돌렸습니다)으로 멋있는 문장을 던집니다. "The fooled may not get fooled again(한번 속지 두번 속나)"
무어감독이 이어서 토를 답니다 "for once we agreed(그말 딱 하나는 네 말이 맞다)". 무어감독의 분투에도 불구, 미국인들은 기꺼이 또 속을 자세가 돼 있군요.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부시가 승리한 오하이오주 선거결과에 케리후보가 승복못하겠다는군요. 오하이오 주지사가 케리후보의 사촌동생쯤 된다면 4년전 선거의 완벽한 재판일텐데, 오하이오 주의 태프트 주지사는 태프트 전 미국대통령의 손자인 공화당원이라네요.

어쨌든 미 대선 개표, 재미는 있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군요. 머니북스 기사써야겠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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