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진 이유

박문환(샤프슈터) 동양종금증권 강남프라임지점 | 2008.12.08 08:24

[샤프슈터의 증시 제대로 읽기]<14>국화와 칼(2)

편집자주 | 샤프슈터. 동양종금증권 강남프라임지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문환(43) 팀장의 필명입니다. 주식시장의 맥을 정확히 짚고, 가급적 손해보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그의 투자 원칙과 성과에 따라 붙여진 필명이지요. 한국경제TV(와우TV)에서 10여년 동안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투자정보를 제공했던 샤프슈터 박문환 팀장이 매주 월요일 개장전에 머니투데이 독자를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환영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미국이 플라자협의를 추진한 데는 애초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 플라자협의 이후 일본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즉각 깨달았다. 이 상태에서는 제조업이 다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약속한 것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통화완화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1986년 1월에 이르러 13개월 동안 5%였던 금리를 2.5%까지 250BP의 금리인하를 단행하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단초가 되는 버블을 키우기 시작하게 된다. 물론 버블을 키우기 위해 은밀하게 미국의 압박도 있었다. 이를테면 금융자유화와 더불어 동경을 세계 금융의 허브로 만들자는 거절할 수 없는 권유 같은 것 말이다.

즉각 변동환율제가 채택되고 외국인들의 주식 소유제한이 철폐되었다. 선물시장이 개설되면서 헤지의 수단이 생기게 되고 외인들의 투자가 활성화되게 된다. 해외 자본이 몰려들고 수급이 좋아진 일본 증시는 상승과 상승을 거듭하게 된다.

그럼 일본의 장기불황을 가져오게 한 몇 가지의 사건들을 추려보자. 첫 번째는 미국식 직접금융의 개시였다. 그 이전까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이 주로 이루어졌었지만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CD나 BW 등을 발행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은행의 역할이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었는데 은행들은 이제 다른 활로를 찾아야만 했고 그들은 개인금융에 눈을 돌리게 된다.

즉, 가계를 대상으로 토지 담보융자에 주력하게 되면서 일본의 은행들이 주로 주택가격과 부동산 가격을 올리게 되는 주역이 된다.

또 하나는 유동성합의인 루부르 합의였다. 1987년 2월 에 파리의 루브르에서 만나 재정투자를 강화할 것을 권유받게 된다. 말 잘 듣는 일본은 당시에 5조 엔에 달하는 재정투자와 더불어 1조 엔에 달하는 감세를 발표한다.(지금 세계도 국제 공조 속에서 재정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이미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해 과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일본의 경제는 이제 폭발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금리가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보니 낮은 금리로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오히려 낮은 금리를 이용해서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이 일본의 투자자로서 나은 선택이었다.

이런 양적 팽창 정책은 마땅히 이익을 창출할만한 구석을 찾고 있었던 은행들의 수요와 맞물리게 되면서 은행들은 앞 다투어 대출을 해주게 되고 낮아진 금리와 더불어 부동산 거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플라자 협의가 있었던 1985년도부터 부동산의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0년까지 총 대출 증가액은 155조 엔이나 되었는데 이들의 절반이상이 주택대출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돈들의 주택시장에서 버블을 만들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단계에서 또 하나의 독(毒)이 은밀하게 주입된다. 바로 국제 금융재벌들의 모임인 바젤회의를 통해서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지분 가운데에 45%를 자기자본으로 인정을 해주는 듣기에도 민망하고 황당한 조치가 내려진다.

이로서 자기자본 비율에 좀 더 여유를 갖게 된 은행들은 지금까지의 속도를 능가하는 엄청난 속도로 대출을 늘려 나가게 된다.


은행들은 개인고객들이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담보가치의 120%까지 대출을 해주었다. 통화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다.

바젤에 모였던 은행가들은 분명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계획은 완벽했다. 이제 말 잘 듣는 일본은 스스로 미니어처가 되기 위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바젤의 은행가들은 버블을 터뜨리기 위한 제안을 한다. 경기가 과열되었으니 금리를 올리라는 주문이었고 말 잘듣는 일본은 1989년 5월에 한방에 75BP의 금리인상을 시작으로 1년 만에 무려 350BP나 인상시킨다.

지금까지 저금리에 푹 빠져 있었던 개인투자자들은 고금리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퇴직금 받아서 겨우 건물 하나 장만했던 개인들은 단기간에 6%까지 치솟은 금리로 인해 어렵게 장만했던 부동산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조달금리가 높아지자 투자를 중단하게 되고 증시는 이제 몰락의 서곡이 시작되게 되었다.

은행 들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개인들에게 대출을 해준 것은 시가의 120%나 되었지만 투자 원금도 회수할 수 없었다. 이는 자본금의 결손으로 이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엄격한 대출통제에 들어갔다.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 중단되면서 시장은 냉각되기 시작했다.(지금 리먼브라더스의 부도 이후 심하게 대출통제에 들어간 은행들을 생각해보라.)

일본의 부동산은 “땅은 거짓말을 안 해” 라고 하는 소위 부동산 불패의 믿음을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당시 291을 기록하면서 최고점을 만들었던 부동산 지수는 현재까지도 80대 중반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단 한번도 회복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89년 당시에 1억 엔짜리 부동산을 샀다면 2008년 현재가로 2800만 엔까지 떨어졌다는 말이 된다. 참으로 엄청난 디레버리지가 무섭도록 오랜시간 진행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경우 부동산의 버블이 터지는 순간 3년에 걸쳐 반 땅이 났고 이후 부동산은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주가도 그렇지만 부동산도 여전히 고점대비 1/4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의 경제가 강한 디플레의 늪에 빠져 잠을 자는 18년 동안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제는 호조를 지속했고 이제 일본과 미국의 힘의 균형이 맞추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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