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와 나"..오바마의 가상 독백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8.11.17 14:57

[김준형의 뉴욕리포트]

"대통령에 당선된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꿈만 같다. '위대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함께 흘렸던 눈물의 감동은 여전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데 의미를 두지만, 나는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부의 재분배'를 내걸고 당선된 것도 역사적인 일이다.

사실 나보다 한발 앞서 '변화'와 '분배'를 내걸고 당선된 한국 대통령이 있었다는걸 난 잘 안다. 한국 정부는, 나와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통점을 강조한다는데 누가 봐도 나와 가장 닮은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어렸을때 하와이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섞여 자라서 한국에 대해서는 늘 관심이 많았다. 6년전 한국의 대통령 선거날 풍경도 내가 당선되던 날처럼 젊은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서 축제를 벌였다지 아마?

변호사출신이라거나 젊을때 좀 힘들게 살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와 미스터 노는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과 소통한다는 점이 가장 닮았다. 한국에는 '노사모'라는게 있었다지만, 나에게도 '마이BO(My.BarackObama.com)'같은 든든한 친구들이 가장 큰 정치적 기반이다.

그런데, 금융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상황에서 출발하는 나는 미스터 노보다 힘든 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바마 랠리'는 선거 하루로 반짝하고, 시장은 여전히 기력을 못찾고 있다.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경제지표는 국민들 표정을 어둡게 하고 있고, 집과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시 정부는 앞길을 정리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레임덕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에도 7000억달러의 '부실자산 구제프로그램'에서 '부실자산인수'를 배제하겠다고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발표했다. 사전에 귀띔을 받긴 했지만, 이 사람들 정말 갈팡질팡이다.

'당선자 시절'은 책임은 없고 화려한 조명만을 받는 가장 행복한 때인데, 내가 품어온 이상과, 대통령으로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배치는 벌써부터 천근만근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미스터 노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로 자신을 합리화한것도 그런 가책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7000억달러 구제금융에 동의한 것부터가 두고두고 찜찜하다.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국민세금으로 월가의 기득권세력을 먹여 살리자는데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월가 금융기관들은 그 돈으로 배당과 보너스라는 기득권을 열심히 챙기고 있다.


당선후 첫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정책공조를 강조했으면서도 이번 G20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율배반이지만 할 수 없었다. GM같은 자동차 회사 노동자들 생각해서 한-미 FTA재협상을 주장한 내가 한국 대통령을 포함한 G20 지도자들과 같이 웃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취임 전이라 언론의 비판이 잠잠하지만, 아마 취임후 하루만 지나면 '허니문'은 끝날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 정부가 보수 언론들에게 난타당했던 것처럼 (겉으론 좀 덜할지 모르지만)아니, 언론과 반대진영의 공격강도는 그보다 오히려 심할 것이다.

사실 워싱턴의 구태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막상 둘러보니 쓸만한 인재들이 정말 없다. 믿을 만한 사람들만 쓰자니 '쓰리 에이티 식스(386)'로 인의장벽을 쌓았다가 망가진 미스터 노처럼 나도 OB(오바마 보이)들에게 휘둘릴거 같다.

그래서 마음에는 안들지만 힐러리 클린턴에게 국무장관을 제안하고, 공화당 사람도 쓰겠다고 했지만 재무장관 후보만 해도, 로렌스 서머스니, 로버트 루빈이니 모두들 월가 돈으로 살아 왔고, 월가를 이 모양으로 만든데도 기여한 사람들이다.
공무원들이야 한국이나 미국이나 영혼이 없는건 마찬가지니까 폴슨 같은 사람 그냥 쓰면 된다고들 하지만, 노무현 정부도 이전 정권부터 기득권을 이어온 공무원들에 휘둘려서 나중에는 되는게 하나도 없었지 않은가.

당선후 첫 기자회견이후 공식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말' 때문에 처음부터 발목잡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한국에서는 'NATO'가 'No Action Talk Only'라는 뜻이라는데, 변화와 개혁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온통 말싸움만 하다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되니까.
'분배'하면 두드러기가 돋고, '개혁'하다간 나라 망한다는 생각을 갖게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노정권 부작용이라고 들었다.

요즘은 낙향해서 고무신 신고 농사지으면서 지낸다는데, '개혁'과 '분배'에서 이룬 것도 많은 것 같은데 그런것까지 전부 묻혀가고 있으니 보기에 안됐다.

4년뒤, 뼈아픈 패배감만을 안고 재선도 못해보고 좌초하게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내가 미국 경제를 못살리고 미국의 국제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세계는 앞으로도 부시정부의 유산에서 헤매게 될 텐데...조직 만들기 잘하는 한국 국민들이 앞장서서 '글로벌 오사모'라도 만들어주지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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