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기='금융과 환율 분리'의 비극

머니투데이 홍찬선 MTN 경제증권부장(부국장) | 2008.11.04 13:31

[홍찬선칼럼]금융정책은 금융위, 환율정책은 기재부로 분리 사전대응 못해

미국 발 금융위기로 한국의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며 ‘위기는 없다’던 정부의 자신감은 한미 통화스와프협정을 서둘러 체결한 것으로 근거 없었음을 보여줬다.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초특급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은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은행의 외화차입을 1000억 달러까지 정부에서 보증하겠다고 했고, 27일엔 한국은행이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인하했으며, 30일에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체결됐다.

정부의 잇단 위기 대책..효과 내지 못하는 데 이유있다

하지만 원/달러환율은 여전히 1300원을 위협하고, 일부 건설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릴 정도로 시중 자금사정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890대가지 폭락했던 코스피가 1120대로 올라섰지만 최고치(2085)에 비해선 여전히 45%나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추가상승에 대한 믿음을 찾기 어려운 반면, 다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잇따라 내놓은 대책이 이렇다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정부는 11월3일 ‘금융 및 실물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재정에서 돈을 풀고(14조원)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얼어붙은 심리와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종합대책이 ‘위기 유령’을 말끔히 날려버릴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의 계속되는 위기대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대책이 선제적이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사후약방문으로 제시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책이 이미 불거진 문제를 처리하는데 급급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미 예고..조기경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을 뿐

따지고 보면 이번 위기의 시작은 외화유동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와 그에 따른 환율 급등이었고, 그런 상황은 충분히 예상됐었다. 외국인이 2006년에 10조7534억원 순매도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 24조7117억원, 2008년 11월3일까지 41조5534억원 등 3년 동안 77조185억원(약750억달러)어치나 주식을 팔고 한국을 떠났다. 또 2004년에 281억달러였던 경상수지 흑자는 06년에 53억달러, 07년에 59억달러로 급감한 뒤 올해는 138억달러 적자(1~9월중)로 돌아섰다.

상황이 이런데도 원/달러환율은 2004년말에 1151원에서 06년말에는 955원, 07년말에는 927원으로 계속 떨어졌다(원화강세). 외화수급상황과 환율이 거꾸로 간 셈이다.

특히 대외채무는 2004년말 1722억달러에서 올 6월말 4197억달러로 2.4배나 급증했다. 반면 대외자산은 2889억달러에서 4224억달러로 46%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외자산에서 대외부채를 뺀 대외자산은 1166억달러에서 27억달러로 쪼그라들었고, 결국 순부채국으로 전락했다.


외채가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은행 외채, 단기외채의 급증이었다. 은행의 단기외채는 같은 기간 447억달러에서 1455억달러로 무려 1008억달러(3.3배)나 급증했다. 전체 외채증가액의 40.7%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결국 이렇게 급증한 은행의 대외채무가 이번 외환유동성 부족에 따른 외환위기 우려를 낳은 원인이었다.

위기 원인은 공무원 직무유기?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데도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은행의 단기 외채가 급증하고,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며,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등 환율상승과 외환유동성 부족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지만 정부에서 이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공무원들이 알고도 모른 척 하면서 직무유기를 했을까? 아니면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을까?

금융정책과 환율정책을 억지로 분리한 이상한 정부조직개편이 원인(遠因)

이유는 그것을 모두 포함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단행한 정부조직개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금융위원회를 기획재정부와 분리하면서 (국내)금융정책은 금융위에 주고, 환율정책은 기재부에 주는 ‘이상한 분리’를 한 것이 원인(遠因)이었다.

금융과 환율의 분리에 대해 당시 머니투데이는 평상시에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닥칠 경우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과 환율의 분리는 금융청을 분리시키고 환율을 재무성에 남겨둔 일본 모델을 따른 것이었지만, 금융시장 개방화와 복합화로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을 떼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정책과 환율정책을 분리시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이었다.

금융과 환율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은행 외채가 급증하고 있는데 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상당히 완만했을 것이며, 은행 단기외채가 빠르게 증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은 바보나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금융 및 실물경제 위기를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환(外患)이라고 해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현재 위기는 잘못된 내부 시스템과 정책의 실패라는 내우(內憂)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풀 수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한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금융정책과 환율정책을 분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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