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칼럼]위장병 걸리며 개발한 위장병약

김재규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신약연구실장 | 2008.03.12 13:45
전세계적으로 7500건 이상의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질병과 과학자와의 싸움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병원이나 약국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약물들은 최초에 개발될 당시 수만개의 화합물로부터 질병에 치료효과가 있는지 다양한 동물시험 모델에서 약효 검증과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무수히 많은 난관을 통과한 후 치료제로서의 빛을 보게 된다. 그 하나하나에는 개발자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항궤양제 치료제 분야에서 기존의 약물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신약인 레바넥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다. 레바넥스를 개발하면서 경험한 신약개발 과정의 에피소드를 몇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유한양행이 위궤양치료제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 이미 시장에는 신약개발 역사의 중요한 획으로 구별될 만큼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글락소사의 잔탁과 새로운 작용기전(프로톤펌프억제제)으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른 아스트라의 오메프라졸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골리앗을 상대로 유한양행은 선진 제약사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혁신적인 기전인 가역적 프로톤펌프억제제(위산펌프길항제, Acid Pump Antagonist, APA) 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 신약 기반기술이 걸음마 수준인 당시 상황에서는 겁 없고 무리하기만 한 도전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모방 상대가 없어 모든 시험과정을 연구원 스스로 확립해 나가야 하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스트레스도 심했다. 수 없이 많은 화합물을 합성하고도 약효가 나타나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레바넥스 개발 이전에 후보물질로 연구되던 코드명 YH1238이 전임상 단계에서 기대한 만큼의 약물특성을 보이지 않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돼 포기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며 프로젝트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좌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런 과도한 스트레스가 하나의 원인이었을 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당시 위궤양치료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원의 대부분이 심한 위장병에 걸려 많이 고생했다.

한 때 우스갯소리로 연구도중 알게 모르게 위궤양 치료효과가 있는 화합물을 장기간 흡입하였을 테니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울거란 기우에 낙담하기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한편으론 그 같은 상황이 위궤양치료제 개발에 꼭 성공하고자 하는 오기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싶다.


한번은 레바넥스의 고용량에서 동물시험을 진행 시 이전에 제조한 시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부작용이 관찰돼 필자를 비롯한 담당 연구원들은 한동안 연구프로젝트를 중단해야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경험이 있다.

청춘을 불살랐던 열정과 오랜기간 쏟아부은 막대한 투자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지않을까 하는 기우에 모두 입술이 부르터서 붕어입술을 하고 보따리를 싸야하는 것 아닌가 심각한 논의도 있었다. 다행이 그 원인이 문제가 된 원료 중에 포함된 불순물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안도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에는 초기단계부터 각 합성단계별 밸리데이션 분석을 철저히 하여 그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 당시 합성을 담당했던 필자는 원인규명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씁쓰레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어렵게 동물시험을 마치고 레바넥스가 임상에 진입하였을 때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연구진은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는데, 결국 그 원인을 제제학적으로 극복해 슬기롭게 해결했지만 하마터면 큰 난관에 부딪힐 뻔 하였다.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구원투수처럼 나타난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회사 최고경영자의 연구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은 신약이 탄생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레바넥스의 개발 성공으로 혁신 신약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이 연구자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대열에 참여하였다는 것이 또한 무한한 영광이다.

하나의 신약개발 성공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가 따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하는 연구자세가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또 다른 신약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팀웍을 강화하며 새로운 신약창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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