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예술은 사기, 금융도 사기"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 2007.08.20 12:37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생전에 "현대예술은 고등사기꾼 놀음"이라고 말하곤 했다지요.
 
예술이 사기라는 주장은 집에서 쓰던 변기통을 전시회에 출품한 마르셀 뒤샹이나 담배파이프를 그려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실감이 납니다. 야채수프 깡통이나 콜라병 등을 그린 미국 팝아트 계열의 앤디 워홀 작품이 수백만, 수천만달러에 팔리는 현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기놀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 마르셀 뒤샹의 변기통 작품인 '샘'.
피카소 이상으로 현대미술에 큰 영향
을 미쳤다.
그렇지만 누구도 뒤샹이나 마그리트, 워홀을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뒤샹의 변기통 작품은 기존 고급예술에 반기를 든 다다이즘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팝아트 계열의 화가들은 미술을 소수의 사치품에서 대중들도 손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든 업적을 인정받습니다.

예술과 사기놀음을 구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집에서 쓰던 변기통을 미술작품으로 내놓는다면 그건 당연 사기지요. 저의 장난감이기도 한 골프채를 그린 다음 '이건 골프채가 아니다'라고 해도 역시 웃기지 말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사기일까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없이 남이 한 것을 따라한다면 예술이 아니라 사기일 것입니다. 역사적 고민과 성찰이 없어도 예술이 아닙니다. 다다이즘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고, 팝아트는 미술을 대중의 품으로 돌려보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예술과 사기를 구분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동성애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삶은 치열하고 불행하기까지 합니다.
 

로 가져왔다.">▲ 엔디워홀의 캠벨 수프 그림. 팝
아트 미술가들은 그림을 대중곁으
로 가져왔다.
예술계 저명인사들을 중심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우리 사회의 학력 위조 파문을 보면서 또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사기입니까. 누가 예술가이고 누가 사기꾼입니까.
 
백남준은 마치 예언자처럼 현대예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지만 그의 경고는 예술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브프라임과 엔캐리트레이드로 요동치는 세계 금융시장을 보면 "금융은 사기"라는 경고성 말이 생각납니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금융은 성장률을 높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망한 산업이지만 금융은 사기성이 좀 있습니다. 특히 파생상품과 같은 현대의 첨단 금융상품에 들어있는 사기성에 유의해야 합니다.
 
서브프라임 대출이 미국의 전체 모기지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 12%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입니다. 이게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엄청난 전염성과 폭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기지 대출이 일어나면 첨단 금융기법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증권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모기지 대출이 수백 가지의 자산담보부증권과 채권으로 거듭납니다. 그 결과 뿌리인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되면 수백개 금융상품이 줄줄이 부실화되고 맙니다.
 
서브프라임에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차입매수(LBO)라는 것을 통해 원금보다 훨씬 많은 외부자금을 끌어들인 것도 큰 원인입니다. 현대금융의 기본이 돼버린 레버리지가 부실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합니다.
 
자기 돈은 몇푼 되지 않으면서 엄청난 외부자금을 끌어들이고, 하나의 상품을 쪼개고 붙이고 변형시켜 수백 가지의 복합상품을 만드는 게 현대의 첨단금융이지만 그 안에 포함된 사기성으로 지금과 같은 예상치 못한 글로벌 위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와 충분한 유동성 공급으로 진화되더라도 주기적으로 재연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현대 첨단금융이 갖는,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갖는 그 사기성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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