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아프간 피랍사태의 이면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7.08.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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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 정치세력 탈레반에 의해 23명의 교회 봉사단원이 납치된 지 벌써 20일이 다돼 갑니다. 그 사이 2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됐고, 나머지 살아있는 사람들도 건강이 악화되는 등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부모 형제 등 가족들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매일 눈물로 안전귀환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이번에 납치된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것은 종교적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한국전쟁 등 배고팠던 시절 한국민들이 전세계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나선 봉사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루오가 그린 '성스러운<br>
얼굴', 예수의 큰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하다.▲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루오가 그린 '성스러운
얼굴', 예수의 큰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하다.


가족들의 눈물어린 호소 앞에서, 더욱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고도 그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해 의학적 연구에 활용하게 하는 유족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탈레반에 납치된 봉사단원의 가족이 돼 한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 개신교는 내부적으로 많은 반성과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반성과 논쟁의 핵심은 한국 교회의 선교 방향으로 모아지더군요.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신도 수만 1000만명에 육박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대외적으로 1만6000여명의 선교사를 파견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선교대국입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보니 이 같은 양 중심의 선교활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든, 봉사활동을 하든 현지인의 정서를 우선 고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선교를 하고 봉사활동을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성도 들립니다.
 
반기독교적 정서가 강한 곳에서는 집회나 행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1000여명의 한국 개신교도가 '평화행진'을 하려 한 일을 염두에 둔 반성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선 선교는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세계의 포기라는 급진적 목소리도 나옵니다.
 
종교와 신앙문제는 마치 알몸을 보여주는 것과 같아 가능하면 우리는 서로 언급을 피하려 합니다. 이번 피랍사건을 놓고서도 종교나 선교문제는 빼고 그냥 봉사단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한국 사회 공동체가 모두 나서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내부에서조차 반성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민심의 기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인터넷에서는 3년 전 김선일씨 피랍 때와 다르게 냉랭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흔히 불교도 유교도 자본주의도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지구상에서 가장 교조적으로 변질돼 버린다는 지적을 합니다. 이 점에선 기독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화해이지 배척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신이라는 망상'(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에는 다름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없고, 런던 폭탄테러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도, 고대 석상을 파괴하는 탈레반도, 신성 모독자에 대한 공개처형도 없는 그런 종교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말입니다.
 
개신교도 이슬람도 천주교도 불교도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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