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언해석 유감

머니투데이 임승순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24.09.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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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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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에서 양도소득세 사건에 관하여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았다. 납세자가 구제받아야 할 사건으로 믿었지만 심불(審不)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쟁점은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임대사업용 토지의 양도소득세 감면조건으로 '민간 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민특법')상 임대사업자에게 양도할 것'을 규정하는 점에서 발생했다. 민특법에서는 임대사업자를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자'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양수인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양도소득세 감면이 되는지 여부의 문제다. 원심은 이를 문언 그대로 해석했다. 양도인이 매매대금을 지급할 당시 임대사업자 등록을 마치지 않았다면 감면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양도인의 양도 시기는 곧 양수인의 취득시기라는 점이다. 현행법상 양수인이 임대사업자등록을 마치려면 원칙적으로 토지를 먼저 취득하도록 한다. 현실적으로 토지를 넘겨받을 당시 사업자등록을 마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밖에 양수인의 취득세 감면 규정이나 추징 규정 등 관계 법령 어느 곳을 살펴보더라도 위와 같은 해석의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임대사업용 제공이라는 감면의 취지 또한 양수인의 임대사업자 등록 시점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납세자는 이와 같은 여러 사정들을 들어 과세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감면 규정도 엄격한 문언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 하나였다.



이와 같은 일률적인 문언 해석은 올바른 것인가. 원래 조세 법규의 입법 및 해석의 원리로 조세법률주의가 있다. 그 파생 원리로는 엄격해석의 원칙이 있고 그와 같은 원리원칙이 근대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납세자의 권리보호와 법치주의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고도화된 사회에서 기계적인 문언 해석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입법은 많은 경우에 오류나 미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입법목적과 관련 없고 다른 관련 규정과 모순, 저촉되며 내용이 불합리하다면 이는 필경 입법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과세 조항과 달리 비과세나 감면조항의 경우 규정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의 필요성은 좀 더 크게 된다. 이렇게 입법의 미비가 확인되는 경우 구부러진 문언내용을 진정한 규범의 의미에 맞추어 바로 펴는 것은 법관에 부여된 책무다.



법해석학자 에르스A. 크라머 교수는 그의 명저 법학방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언의미가 갖는 강한 징표효과가 의미론적 해석 논거를 과대평가하거나 문언 페티시즘의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문언 페티시즘은 주술적 문언 의식과 함께 법이 기원하던 시기의 특징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법률 문언에서 나오는 해석은 전혀 논리 필연적이지 않다"며 "법률의 명백한 문언의미는 무조건 법 상황도 명확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법 문언에 반하여 더 설득력 있는 규범의미를 선택해야 한다. 문언과 해석은 대응한 지위에 있지 않으며 문언은 (가장 중요하지만) 여러 해석 요소 중 하나"라고 봤다. 이어 "결정적인 것은 피상적으로 명백한 문언이 아니라 승인된 해석규칙을 통해 탐구해야 하는 진정한 규범 의미"라고 말했다.

법 해석방법론에 관한 저자의 통찰이 마치 본 사안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해당 사건 변호인의 입장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해 본다.
임승순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임승순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법무법인(유) 화우의 임승순 고문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9기로 수료해 각급 법원 판사와 부장판사로 근무하다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로 퇴직했다. 현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등 조세 관련 분야에서 주로 활동한다. 2013년 세계 법조인명록 Corporate Tax 분야 한국대표변호사로 선정됐다. 대표적인 저서인 '조세법'은 세법 분야의 대표적인 필독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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