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아파트 '老치원' 빼면 사업도 멈춘다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2024.09.13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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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 진흥아파트 전경 /사진=네이버 로드뷰서초 진흥아파트 전경 /사진=네이버 로드뷰


앞으로 서울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는 '노(老)치원'으로 불리는 '데이케어센터'(주간돌봄시설)가 늘어난다.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장에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신속통합기획' 방식 추진 시 공공기여(기부채납)로 데이케어센터 등 필수시설 설치를 사실상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면서다.

데이케어센터는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자나 경증 치매환자들이 주간에 미술·음악 등 수업을 듣는 운동 치료 서비스 시설이다. 다양한 돌봄서비스가 가능해 '노인 유치원'이라고도 불린다.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에선 보편적 복지시설이지만, 국내에서는 요양원 같은 시설로 잘못 알려졌다.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진흥 재건축조합은 서울시의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조합 대의원회에서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서초진흥 조합의 이 같은 결정은 데이케어센터 설치에 따른 '실'보다 '득'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끝까지 반대하면 신속통합기획에서 제외되고 일반 재건축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경우 신속통합기획으로 적용받게 된 인허가 기간 단축,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이 없어진다. 사업 기간 수년씩 지연되거나 자칫 사업 추진 자체가 불투명해질 우려가 있다.



다만 앞으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추가 협상을 통해 시설 규모를 줄이거나 별도 주차장을 만드는 대안을 수립, 단지와의 간섭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여의도 대교·시범아파트 데이케어센터 설치 찬반 따라 재건축 사업 '극과 극'

여의도 시범아파트 /사진=김유경여의도 시범아파트 /사진=김유경
실제로 데이케어센터에 따라 재건축 사업추진 속도도 달라진다. 지난달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교아파트'는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수용하면서 조합 설립 7개월 만에 재건축 계획을 확정했다. 공공기여 인센티브로 용도지역도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된다. 용적률은 최대 469%선이다.

반면 '1호 신속통합기획'으로 꼽혔던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조합원들이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결사반대하면서 재건축 사업 진행이 1년 넘게 멈춰선 상황이다. 앞서 정비계획안에는 최고 65층, 2500가구 규모에 용적률 최대 400%를 인센티브로 주는 대신 공공기여시설로 데이케어센터를 설치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시범아파트 소유주들은 아파트 벽면에 '신통기획 1호 속았다', '오세훈발 폭주행정'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데이케어센터 대신 문화시설을 배치한 조치계획서를 시에 제출했지만, 당초 계획을 유지하는 취지로 보완 요구를 받았다. 이에 주민투표를 진행해 설치 찬성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여전히 일부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해당 시설로 아파트 단지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다.

데이케어센터 설치 등 재건축 시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게 서울시의 기조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데이케어센터 없으면 신속통합기획도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밝혔다. 오 시장은 "신속통합기획은 아파트 재건축, 재개발의 속도를 대폭 끌어올리는 동시에 공공기여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고 모든 시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강경한 방침에는 초고령화 사회(고령 인구 비율 20%) 진입을 앞두고 노인돌봄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서울 내 노인요양시설은 입소율이 90%를 넘고, 대기자만 2만명에 달하는 등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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