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이쯤 되면 도전과 심장저격의 '베테랑'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9.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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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한 미소로 문 열고 다크한 눈빛으로 닫은 '베테랑2'

사진=CJ ENM사진=CJ ENM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에서 일반인 시사회로 류승완 감독의 기대작 ‘베테랑2’를 먼저 봤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류 감독이 "영화 보고 너무 놀라지 말라"며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했는데,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베테랑’ 속편이면 시원하게 돌진하는 액션이겠지, 다르다 한들 뭐 놀랄 것까지야…"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류 감독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베테랑2’는 9년 전 1편과는 참 많이 다르다.

‘베테랑’(2015)을 재미있게 본 영화팬들은 제법 많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을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들이대는 ‘서민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이야기. 대중의 답답한 현실을 대신해 권력과 재벌을 향해 통쾌한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는 액션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관객이 무려 1341만 명이나 들었다. ‘범죄도시’(2017)의 마석도(마동석) 이전, 가장 기억에 남는 형사 캐릭터는 단연코 서도철이었다.



그러나 2편은 뭔가 많이 바뀐 느낌이다. 서도철과 강력범죄수사대 동료들의 좌충우돌과 고군분투, 악질 범죄자들의 행태는 그대로인데 시선이 바뀌었다고 할까. 아니면 범죄를 인식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할까. 2편은 최고 권력자나 모든 것을 가진 재벌과의 대결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개인간의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다. 극악무도한 악한이 패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올 때마다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SNS를 중심으로 들끓는 상황. 그 과정에서 ‘죽어 마땅한’ 범죄자로 꼽힌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고, 이는 익명의 존재 ‘해치’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중은 살인이라는 범죄에는 아랑곳없이, ‘정의를 구현’한 해치의 행위에 열광한다. 사람들의 주위를 끌고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콘텐츠라도 띄우는 요즘 유튜버와 팔로워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에 서도철과 형사들은 해치를 추적하고, 신입경찰 박선우(정해인)도 합류한다.

1편은 파렴치하고 이중인격을 지닌 ‘빌런’(재벌)이 있었다. 서도철은 궁극의 정의감과 뚝심으로 재벌에 맞섰다. 네 편과 내 편의 구도가 명확했다. 하지만 이번엔 선과 악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이상한 미소를 지닌 박선우의 행동도 미심쩍다.



사진=CJ ENM사진=CJ ENM
마치 ‘정의는 무엇이냐’고, ‘선과 악은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주먹부터 날렸던 서도철의 주저와 고민이 이를 보여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선우의 미소가 그러하다.

특히 정해인은 ‘치트키’ 같은 인물이다. 이번 작품의 오프닝을 열고, 엔딩을 장식한다. 쿠키 영상까지 있다.


멜로 드라마 ‘남주(남자 주인공)’의 표본이었던 정해인은 그동안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시도를 적잖이 해왔다. ‘시동’(2019)에서는 풋내기 채권추심업자로, 넷플릭스 ‘D.P.’(2021)에선 복서 출신의 군탈체포조로 변신했다. 그리고 지난해 최고 흥행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에선 실존인물인 김오랑 소령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출연 분량은 카메오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았지만 목숨 걸고 상관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군인을 소화해내 박수받았다.

이번엔 거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순둥순둥하고 부드럽던 얼굴은 속을 알 수 없는 야누스적 표정으로 바뀌었다. 서도철을 능가하는 강력한 액션으로 남성미를 유감없이 내뿜는다. 작품의 흥행을 떠나 정해인에겐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진=CJ ENM사진=CJ ENM
정해인은 액션에 진심인 류 감독의 디렉션을 때론 투박하게, 때론 우아하게 표현했다. 가짜 해치와 남산에서 쫓고 쫓는 추격, 계단에서 구르며 몸싸움하는 장면은 스피드와 에너지가 넘친다. 또 빗물이 찰랑거리는 건물 옥상에서 무릎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날리는 액션에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록 몇 편의 액션 전작들이 생각나고, 경찰들이 너무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현타’가 오지만 그래도 스릴과 박진감이 가득하다.

서도철이 해치의 정체를 간파하는 과정이 좀 단선적이고, 유튜버들의 과장이 좀 거슬리며, 매 장면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 기시감을 주지만 그래도 흥행을 위해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류 감독은 "1편의 성공을 재탕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영화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아낀다면 모험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거의 유일한 한국영화다. 게다가 황정민의 서도철에 대한 향수와 뉴페이스 정해인의 변신에 호기심을 가진 팬들이 충분히 많다. 1편만큼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흥행성적을 기대해볼 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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