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괸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백브리핑을 위해 자리 잡고 있다. / 사진=뉴스1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아파트 등 신규 분양 아파트다. 현재 기준이라면 둔촌주공 아파트 전세 세입자는 아무 은행에 간다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최근 대형은행 대부분이 집주인이 바뀌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둔촌주공 같은 신규 분양 아파트를 두고 해석이 다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집주인이 분양대금을 완납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쳐야만 세입자에게 전세대출을 내준다. NH농협은행은 분양대금만 완납하면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하지 않아도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신한은행은 신규 분양 아파트에는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방안을 적용하지 않아 대출이 나온다. 하나은행은 아직 조건부 전세대출 자체를 중단하지 않았다. 모두 이름은 '전세대출'이지만 은행별로 다른 상품을 파는 것이다. 국민은행(기아)에서 신한은행 상품(그랜저)을 달라고 하니 줄 수가 없는 셈이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건 처음 겪는 일이어서다.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이 주담대나 신용대출을 받을 때 은행별로 금리가 다를 수는 있었다. 대출한도도 달랐지만 몇천만원 차이가 나진 않았다. 과거에는 LTV(담보인정비율), 지금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규제로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가 정해졌고 모든 은행들은 그 한도내에서 최대한 대출을 내줬기 때문에 한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은행에선 대출이 나오고, 어떤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여러 은행이 있지만 같은 상품을 팔다보니 사람들 마음 속엔 '은행은 하나'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실수요자가 겪는 불편함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당국 대출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은행별 상이한 기준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권 경쟁 촉진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은행 진입 규제를 완화했다. 새로운 은행이 생기면 국민들이 더 좋은 상품(대출이든 예금이든)을 이용할 수 있다고 봐서다. 하지만 지금 있는 은행들과 대출을 규제와 '관치'로 모두 같게 만들면 새로운 은행이 생긴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 은행업이 가격과 품질, 브랜드 가치로 경쟁하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은행이 각자 다른 상품을 팔도록 해야 한다. 불편을 견딜 인내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