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변요한에게 사랑을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9.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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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사진=MBC


MBC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극본 서주연, 연출 변영주) 고정우는 변요한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정우는 의대 입학을 앞두고 억울하게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돌아온 고향에선 그를 문전 박대하고 경멸한다. 때문에 고정우의 얼굴엔 상처가 아물 틈이 없다.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그가 가장 가깝다 여겼던 사람들은 “결백하다”라는 고정우의 말을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다. 친구라 여겼던 이들은 고정우의 등에 비수를 꽂기까지 한다. 하지만 고정우는 이 모든 비극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짓누를지라도, 죽은 두 친구를 위해 기꺼이 아파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자이기도 하다. 자기 연민에만 매몰되지 않은 고정우의 모습은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을 쓰이게 한다.



변요한의 이전 작품을 여럿 본 사람들이라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속 모습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변요한은 ‘그녀가 죽었다’에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철창신세를 질 뻔했고, '자산어보'에서는 미천한 신분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에서 밥벌이를 해야만 했다. '하루'에서는 끔찍한 시간 속에 갇혀 아내의 죽음을 연거푸 목격해야 했고, '미스터 선샤인'에서는 자신의 가문을 증오하면서 허송세월을 살고 사랑하는 여자에게도 외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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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고정우는 변요한의 필모그래피에서 낯선 영역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루하다거나 뻔하지도 않다. 눈빛 안에 겹겹의 비애를 욱여넣은 그의 얼굴은, 저변의 감정을 품격있게 유영한다. 그리고 고정우는 변요한이 맡아온 캐릭터들의 음울을 가장 안쓰럽고 세밀하게 밀어 넣은 인물이다. 억울함이 자책이 되고 자책이 분노가 되는 절망의 순차. 고정우는 그 상황에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가까스로 움켜쥐려 하지만, 씁쓸한 현실과의 낙차로 계속해서 상흔을 입는다. 자신의 절친 양병무(이태구)가 또 다른 절친을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우는 병무에게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고선 끝내 애통함만 남은 얼굴로 자신의 눈시울을 붉혔다.

변요한은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상처를 받고 상실감을 느꼈다. 가여운 처지 때문에 시청자들이 안타깝게 느끼는 캐릭터는 많다. 그러나 변요한의 캐릭터는 상처를 이유로 유약함에 멈춰있지 않다. 위태롭지만 애써 버티려는 그 고달픈 마음이 눈빛에 처연하게 녹아있다. 그래서 변요한의 캐릭터는 안타까움 이상의 애달픔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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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변요한은 그동안 늘 좋은 얼굴을 보여줬다”라고 아이즈(IZE)에 말했는데, 변 감독은 변요한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좋은 얼굴들을 새로 조합하고 그 정도를 살짝만 증폭 시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주요 장면들을 완성시켰다. 변 감독은 변요한의 MBC 연기 대상까지 확신하고 있을 정도로 변요한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현재 변요한의 역량을 높이 사는 건 변영주 감독만이 아닐 것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변요한이 원톱이고, 때문에 그의 연기가 작품의 흥행을 좌우하는 주요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작품은 매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변영주 감독이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통해 스릴러가 다시 시청자들의 사랑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는 바람도 거의 이루었다. 저변의 감각을 탁월하게 쓸 줄 아는 변요한은 지금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외면받던 장르를 사랑받게 했다. 이젠 변요한에게 그 사랑이 돌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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