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EU AI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머니투데이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2024.09.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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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


누구나 인공지능을 알고 배우고 활용하는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실생활과 거리가 먼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된다. 인공지능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이면서 인간에게 다양한 편익과 혜택을 가져다줬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그 불투명성과 예측불가능성도 함께 커져 다양한 부작용과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허위 정보가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와 결부되면서 사회질서를 뒤흔들기도 하고 인공지능이 생명이나 신체와 결부된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될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위한 법이나 정책적 대응방안에 대한 해법도 제각각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혁신과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위험성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초기단계부터 금지나 제한을 두고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어느 목소리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은 미래의 경쟁력인 인공지능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현명한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한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법(AI Act)을 제정해 지난 8월1일 발효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법·제도적 대응을 고민하는 각국은 EU AI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관련 입법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대표적 사례로 드는 것이 EU AI법이다. 그런데 동일한 법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참고하지 말아야 할 규제로 보기도 하고 모범사례로 적극 참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시각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EU AI법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U AI법은 EU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정치적 합의를 거쳐 채택된 법인 만큼 그러한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해석하고 평가해야 정확한 법규정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또한 EU AI법은 180개 전문(Recital), 본문 113개 조문, 13개 부속서로 이뤄진 방대한 법이어서 전체 조문의 구성과 내용, 조문 상호간 관계, 법의 집행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서도 개별 조문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일부 조문만을 바탕으로 EU AI법의 전체 의미를 평가하는 것은 자칫 잘못된 시사점을 도출할 위험성이 있다. 전체 숲만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숲의 일부 나무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가 이제 막 본격화한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법·제도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EU AI법에 대해 EU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그 외 국가에서도 아직 깊이 있는 분석과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 법 시행을 위한 이행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중요하게 참조되는 EU AI법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EU AI법의 '브뤼셀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의 AI 법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참조할 수 있는 최초 사례인 만큼 정확한 법의 취지와 의미, 개별 조항의 구체적인 요건과 효과,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둘러싼 글로벌 생태계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양한 플레이어나 국회, 정부 당국자, AI 기술이나 법률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 우리나라가 사람 중심의 신뢰할 만한 AI 경쟁력을 갖춰 세계를 선도할 법·제도 환경을 만들어나가길 기대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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