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크레이지’로 선언한 미움받을 용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9.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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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


그룹 르세라핌은 신곡 ‘크레이지(CRAZY)’에서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들을 사랑해달라고 어필하지도 않는다. 대신 “머릿속 감옥을 탈옥”했다며 나다움의 행복을 강조한다. 그들을 심판하는 대상도 자기 자신인 "스스로"이고, 이 행동으로 미움을 받고 “눈이 멀 것을 알아도 저 태양에 키스”하겠다고 말한다. 이 가사에 맞춰 르세라핌이 추는 퍼포먼스는 심지어 보깅이다. 르세라핌은 ‘크레이지’를 통해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 속으로 뛰어든다.

르세라핌은 지난 2022년 팀이 태생했을 때부터 자기애적인 애티튜드를 보여왔다. 이들의 팀명도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자기 확신과 강한 의지를 내포한다. 결코 꺾이지 않는 강함으로 승리를 쟁취하겠다고 포부를 띄웠던 이들이다. 그래서 데뷔곡(‘피어리스(FEARLESS)’)부터 “제일 높은 곳에 닿길 원한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드러냈고, 그 다음곡(‘안티프래자일(ANTIFRAGILE)’)으로도 “더 높이 가겠다”라며 자기 확신을 키웠다. "나의 발걸음은 매 순간 히스토리"라며 직전 발표곡(‘이지(EASY)’)에서도 이들은 그랬다. 르세라핌은 매 디스코그래피마다 자기 확신을 노래했고 그것을 독자적인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
‘크레이지’는 이 정체성에 굵은 방점을 찍는다. EDM에 기반한 테크 하우스 비트에 어반 스타일 랩을 적절히 배합시키고, 이를 미니멀하게 구성해 전형적이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멜로디가 단출하게 느껴지면서도 귀에 꽂히는 감도는 또 강하다. 약 서른 번 정도 나오는 “크레이지”라는 가사는 이 멜로디와 강렬하게 얽혀 후킹하다. 명료하게 떨어지는 음률의 조합이 “몰라 육하원칙 따윈”이라는 강한 어조의 가사와 만나니 ‘결코 꺾이지 않는 강함으로 승리를 쟁취하겠다’라던 포부가 어느 때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퍼포먼스도 마찬가지다. 르세라핌이 ‘크레이지’에서 소화하는 퍼포먼스는 보깅이다. 팔과 다리를 직각으로 뻗으면서 자신감 있는 표정 연기가 필수인 보깅은 장르 자체가 지닌 함의가 특수하다. 보깅은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 성소수자 등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춤이다. 보깅은 단순한 댄스 스타일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며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과장된 몸짓에서 점철된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로 정체성을 강렬하게 어필하는 춤이다. 르세라핌이 가사로 들려주는 메시지와 이 춤의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르세라핌 / 사진=쏘스뮤직
르세라핌은 ‘크레이지’를 통해 멜로디, 가사, 퍼포먼스 3박자 모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올곧게 수반한다. 이에 더해 ‘크레이지’의 곡과 퍼포먼스처럼 멤버들이 보여줘야 하는 바이브 역시 정말 중요한데, 1집부터 차근히 학습한 이 태도가 ‘크레이지’에 이르러 잘 교착됐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미치도록 매력적인 순간을 보게끔 한다. 이러한 태도가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르세라핌의 노래처럼 사는 게 거의 불가능한 세상에서, 이들의 노래와 태도는 일종의 해소와 대리 만족이 될 수 있다. 르세라핌이 이러한 이들을 대표해 뛰어든 미움 받을 용기 속 세상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려 애쓰는 행위를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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