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변신은 무죄 ‘모범답안’ 커닝하라

머니투데이 홍세미 기자 2024.09.03 09:46
글자크기

[심층리포트②]스포츠·농산물유통 센터로 탈바꿈…지역 맞춤형 활용 방안 마련해야

편집자주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화의 여파로 문을 닫는 학교가 늘고 있다. 교육부가 올해 3월 발표한 ‘시도교육청 폐교재산 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교 33곳이 폐교했다. 지난해 18곳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증가폭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겨진 학교부지는 지역 내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현행법상 폐교 임대, 대부 조건 등이 엄격해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폐교 활용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살펴봤다. 또 폐교의 변신을 위해 지자체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취재했다.

▲지난해 폐교된 서울 광진구의 화양초등학교/사진=홍세미 기자▲지난해 폐교된 서울 광진구의 화양초등학교/사진=홍세미 기자


#. 서울 광진구의 화양초등학교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학교 정문이 있던 곳에는 차단기가 설치됐고, 시끌벅적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운동장에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다. 광진구는 주민 편의를 위해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활용해 24시간 개방하고 있다. 주민 산책로도 조성됐다. ‘펫티켓’을 알리는 현수막이 학교 곳곳에 걸려 있다. 학교 주변 상권은 인근 대학교 학생을 위한 음식점과 카페, 주점 등으로 채워졌다.

저출산이 장기화되면서 전국적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해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방치된 폐교들이다. 남겨진 학교부지는 지역 내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교육환경 악화를 넘어 지역 공동화 등을 가속화할 수 있다. 화양초등학교 인근에서 거주하는 주민 A씨는 “오랫동안 학교를 방치하면 좋을 게 없다”며 “요즘은 더워서 산책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밤에 학생들이 종종 온다”고 말했다. 이어 “펫티켓 현수막도



붙어 있지만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강아지 대변을 버리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 3월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폐교 3955곳 중 2609곳은 매각이 완료됐고, 979곳은 활용, 367곳은 미활용 폐교로 남아 있다. 지방재정교육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미활용 폐교가 가장 많은 곳은 전남(83개교)이었다. 그 뒤를 △경남(75개) △강원(55개) △경북(54개)이 따랐다.



서울은 활용방안 다양한데…지방서는 “철거하자” 의견도
폐교는 ‘폐교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활용 방안이 마련된다. 법에 따르면 폐교는 △교육용시설 △사회복지시설 △문화시설 △공공체육시설 △귀농어·귀촌 지원시설 등으로만 매각·임대할 수 있다. 폐교부지 활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폐교에 대한 통합적인 대응 마련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방치된 폐교가 지역에서 잘 활용되려면 부지에 맞는 대응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를 지역마다 다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가 위치한 곳이 도시인지, 농촌인지, 지역소멸지역인지에 따라 활용방안이 다르다”며 “지역 상황이 입지에 따라 달라 통합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화양초등학교의 경우 접근성이 좋고 부지가 넓어 수요가 많다. 미활용 폐교로 방치된 것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 광진구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2호선과 7호선이 지나는 건대입구역에서 도보로 6분 거리에 위치한 화양초는 운동장을 포함한 대지면적만 약 1689평에 이른다. 서울시교육청은 화양초 부지에 평생학습시설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광진구청은 인근에 청년 인구가 많다며 청년 복지시설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청소년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을 세우는 안을 들고 나섰다.


지방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폐교를 활용하기조차 어려워 건물 자체를 철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곳도 있다. 오래된 폐교의 경우 안전사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다시 건물을 활용할 때 들어가는 운영비와 인력 운용 등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폐교 부지 활용은 각 시도교육청의 몫인데, 마땅한 활용방안이 없으면 지자체나 민간에 매각·대부하게 된다. 매수·대부자를 찾아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많아 활용하기 쉽지 않은 점도 문제다.

전북도의 경우 교육청 보유 폐교는 39개교다. 일부는 폐교를 재활용해 탈바꿈될 예정이다. 그러나 폐교 중 10여 곳은 인구가 급감한 섬이나 산간 오지에 있어 앞으로도 마땅한 용도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정수 전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익산2)은 “폐교를 다시 활용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철거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며 “자칫 잘못 활용하면 사고가 생길 수 있고,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철거해서 부지만 보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치된 폐교는 우범지대로 전락하기도 한다”며 “폐교에 대한 규제를 풀어 임대나 철거 등 지역에 맞는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오랫동안 방치된 지역의 경우 폐교의 용도변경 등 규제를 걷어내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지역에 맞게 융통성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현재 폐교 특별법에 따라서만 활용방안이 마련되는데, 10년 넘게 방치된 폐교가 있다면 현행법으로는 적합하게 활용할 수 없다는 걸 반증한 것”이라며 “그런 지역에 대해서만이라도 법을 개정해 지역 사정에 맞게, 융통성 있게 용도변경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용호도에 국내 최초의 섬마을 폐교를 활용한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가 설립, 개소식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통영시 ▲경남 통영시 한산면 용호도에 국내 최초의 섬마을 폐교를 활용한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가 설립, 개소식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통영시
스포츠센터·농산물유통센터로 탈바꿈…“지역 특색 맞게 활용”
우리나라보다 먼저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 문제를 겪은 일본의 경우 매년 500개 전후의 초·중·고교가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특색에 맞게 폐교를 활용하는 곳들이 있다. 폐교는 대체적으로 소득증대시설이나 교육시설로 탈바꿈하지만 스포츠센터나 농산물유통센터, 고양이 보호소 등 주민 의견 청취를 통해 지역 특색을 살리는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난 2003년 폐교한 경북 성주군 대가면 대성초교는 폐교 4년 뒤 성주군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로 재탄생했다. APC는 성주 대표 특산품 성주참외의 수집·선별·포장·저장·수송·공판기능을 모두 갖춘 곳이다. 전국 최초로 지역 9개 단위 농협이 성주조합공동사업법인을 만들어
독립채산제로 운용하며 물류비용 절감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농가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12년 문을 닫은 경남 통영시 한산초 용호분교는 지난해 9월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로 만들어졌다. 동네 길고양이들이 많은 것을 착안해 폐교를 고양이 보호센터로 만들었다. 현재 고양이 20여 마리가 있고 최대 120마리까지 수용 가능하다. 주민들이 2020년 경남 주민참여 예산 공모사업에 지원했고, 예산 4억여원이 투입돼 만들어졌다. 운동장을 포함한 총 3556㎡ 규모 2층짜리 시설에 보호실, 치료실, 노령묘 공간, 캣북카페 등이 마련됐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한 ‘경기학생 스포츠센터’에 조성된 ‘레이싱존’ /사진=뉴시스▲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한 ‘경기학생 스포츠센터’에 조성된 ‘레이싱존’ /사진=뉴시스
경기 용인에서는 옛 기흥중 건물을 활용해 2021년 3월 경기학생스포츠센터를 개관했다. 폐교가 스포츠센터가 된 경우는 처음이다. 총 4개 층 규모 센터에는 바이크 레이싱 존, 정보기술(IT) 체육교실 등 다양한 디지털 스포츠 시설이 조성돼 있다. 경기학생스포츠센터는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융복합 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앞으로도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경기 북부 폐교를 활용한 (가칭)체육 공유학교 설립을 추진한다.

앞으로도 폐교의 변신은 계속된다. 교육부는 폐교가 수영장과 북카페로 재탄생한다는 내용이 담긴 ‘학교복합시설 2차 공모사업’을 지난 8월 8일 발표했다. 경기도 이천의 폐교는 ‘모가분교 학교복합시설 건립 사업(가칭)’을 통해 수영장과 늘봄공유학교로 재탄생한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폐교는 복합교육체육센터로 탈바꿈해 생존수영센터와 북카페가 건립될 예정이다.



아울러 폐교 활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폐교는 신입생 수 등에 따라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며 “지역 주민들과 구청, 교육청, 지자체가 함께 준비위원회를 결성해 앞으로 폐교가 될 곳을 어떻게 활용할지 미리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