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정 한국만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버넌스 갈라파고스'가 될 것인가?

머니투데이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2024.08.29 04:40
글자크기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최근 외국인 투자자 몇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투자 경험 30년이 넘는 어느 미국 투자자는 "솔직히 상법 개정이 없으면 한국은 주주 보호책이 없으므로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헤지펀드에 근무하는 다른 투자자는 "한국 투자 정말 겁난다. 내가 투자한 한국 기업이 엉뚱한 관계사와 합병한다는 공시가 종종 나와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금융위원회가 밸류업 도입을 공식화한지 7개월 지났지만 막상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상장사는 10개 미만이다. 밸류업 컨트롤타워가 흔들리며 밸류업 추진에 대한 대기업들의 눈치경쟁은 치열하다. 우리 기업들이 밸류업 기회를 놓치고 주주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장기성장이 더욱 둔화 될 것이다.



이미 상장사 장기 EPS(주당순이익) 증가율은 연 3%대로 하락해 우리 기업은 저성장의 덫에 빠졌다. 상법이 개정되면 성장 기회 놓친다는 재계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지배주주는 경영권 유지에 혈안이 돼 국내외에서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고 있다. 상장사 주식수는 매년 4%씩 증가해 희석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HD현대마린솔루션처럼 자회사를 상장하고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는 인색한 탓이다.

정부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추진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하자 한화·두산·SK그룹은 일주일 간격으로 지배주주 중심의 공개매수 및 M&A(인수합병)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5일 한화에너지가 한화 보통주 8%를 추가 매수해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공개매수 의사를 밝혔다. 절차적 관점에서 김동관 부회장의 행위는 이사의 자기 거래(self dealing)에 해당된다. 이과정에서 일반주주는 구조적 갈라치기(structural coercion)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지난 7월11일에는 두산그룹이 자본시장법의 합병비율 조항을 악용한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했다. 자본거래가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두산은 알짜자회사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이 14%에서 42%로 상승한다. 일반주주 지분율은 그만큼 하락한다. SK는 지난 7월17일 이사회결의를 통해 상장사 SK이노베이션이 비상장사 SK E&S를 흡수합병한다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SK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지분을 각각 36%, 90% 보유 중이다. SK그룹의 문제는 빚에 대한 불감증과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지배주주에 충성하는 그룹관계자와 재선임을 위해 눈치보는 사외이사들 때문이다. 국회는 빠른시일 내에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독립 이사들이 소신있게 이사회 활동하기 위해서는 연임을 금지하고 4년 단임을 기본으로 주주들에게 중간 평가 받는 것도 좋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