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대출거부는 차별" 인권위 결정에 금융당국 대책 마련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2024.08.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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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은행연에 인권위 권고 사항 전달 예정… 금감원도 개선 방안 논의
금융권 "지적장애인 대출, 조심스러울 수밖에" 볼멘소리도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그래픽=윤선정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그래픽=윤선정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는 관행의 시정·개선을 권고하자 금융당국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각 은행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금융상품 안내서 마련을 당부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도 금융소비자보호 총괄부서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2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전날 인권위가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에 내린 '지적장애인 대출 거부 관행' 개선 권고를 수용하기로 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A씨(진정인)는 장애인특별공급 당첨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지난 3월 A씨는 아파트 잔금을 치르기 위해 경기 지역 한 시중은행(피진정인) 지점에서 3억3000만원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해당 시중은행은 지적장애를 이유로 대출이 불가능하다며 A씨의 후견인증명서 또는 후견인이 필요없다는 법원 판결문 제출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인 시중은행이 A씨 의사능력 유무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봤다. 추후 분쟁 가능성 때문에 지적장애를 문제 삼아 대출을 거부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7조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에 업무 방식 시정을 권고했다. 이와 더불어 금융위원장에게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해 대출 등 금융상품에 관한 알기 쉬운 안내서를 마련할 것', 금감원장에겐 '피진정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에 지도·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 사항은 강제성은 없지만 수용하지 않으면 불수용 사실이 공표된다.

금융위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각 은행이 인권위가 권고한 사항을 이행할 수 있게 조치할 계획이다.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상품 정보를 성실하고 정확하게 제공할 책무는 '금융상품 판매업자'(금융사)가 지켜야 한다. 국가의 책무는 금융소비자 관련 법 제정이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인권위가 권고한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알기 쉬운 금융상품 안내서 마련'은 엄밀히 말하면 금융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인권위가 권고한 내용을 이행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스1/사진제공=뉴스1
인권위가 금감원에 권고한 사안과 관련해서도 금융소비자보호총괄 부서가 개선할 수 있는 사항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을 위원장을 하는 '공정금융 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올해 초부터 활동하며 불공정 금융관행 개선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을 펼쳐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권위 결정의 취지와 명분은 충분히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어떻게 보완할지 관련 부서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적장애인 관련 대출은 현실적으로 애로가 많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이미 대부분 국내은행은 장애인 등 취약계층 대출 관련한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중은행도 관련 내규에 따라 A씨의 의사능력과 대출 상품 이해도를 따지긴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적장애인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원치 않는 대출을 받는 등 불법에 휘말릴 위험이 있는 데다가 이후 상환하지 못해 추심으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며 "금융사가 지적장애인의 의사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고, 이후 채권이 부실화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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