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김명민, 아버지의 이름으로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8.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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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본좌'의 애끓는 부성애 열연에 시청자 환호

사진제공=스튜디오지니사진제공=스튜디오지니


연기의 방법을 크게 나눌 때, 배역에 배우를 맞추는 연기가 있고 배우에 배역을 맞추는 연기가 있다. 전자는 ‘메소드 연기’, 후자는 ‘서사적 연기’라고 한다. 배우 김명민을 이야기할 때는 전자, 이 ‘메소드 연기’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역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연기. 그러한 연기법을 구사하는 배우가 여럿 있지만, 김명민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이름 중 하나다.

그런 ‘연기본좌’ ‘명민좌’라 불리는 김명민이 돌아왔다. 2021년 JTBC에서 방송된 드라마 ‘로스쿨’ 이후 3년 만이다. 그는 지난 12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ENA의 드라마 ‘유어 아너(Your Honor)’에서 김강헌 역을 연기 중이다. 김강헌은 극 중 배경이 되는 우원시의 뿌리가 되는 우원그룹 수장으로, 막강한 재력 뒤에 더욱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다. 두 번째 결혼으로부터 얻은 아들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복수심에 휘감기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부성애’를 축으로 죽인 아들을 살려야 하는 아버지 송판호(손현주)와 죽은 아들을 위해 죽여야 하는 아버지 김강헌의 맞대결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지니TV 오리지널 그리고 ENA라는 주요 방송사가 아닌 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1회 1%대의 시청률에서 3.6%대의 시청률로 껑충 뛴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스튜디오지니사진=스튜디오지니


모두가 그렇듯 ‘유어 아너’에서 시청자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연기본좌’라 불리는 배우 손현주와 김명민의 연기 맞대결이다. 각각 1990년대 초반과 중반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해 3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한 번도 같은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와의 협연을 학수고대했으며, 마침 장르나 극의 분위기와 줄거리가 두 사람의 맞대결을 그리고 있기에 전에 없는 ‘연기대결’을 구경할 기회가 마련됐다.

이미 이스라엘에서 2017년 ‘Kvodo’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던 ‘유어 아너’는 미국판을 거쳐 이번에 한국판으로도 제작됐다. 해외판들이 강직한 판사가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범법을 저지른다는 줄거리 속에서 인간 안에 내재한 딜레마를 파헤치는 작품이었다면, 한국판은 반대편 조직 보스로 설정된 김강헌의 덩치를 키워 두 부성의 맞대결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원래 주인공인 송판호의 캐스팅이 손현주라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반대편 김강헌 역이 김명민이 합류하면서 드라마의 단단함은 더욱 빛난다. 실제 공개된 4회까지의 방송에서 실제 3회 말미부터 두 사람은 처음 만났지만, 불꽃 튀는 눈빛에서 나오는 기백의 대결은 과연 ‘연기본좌’의 맞대결을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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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더욱 반가운 것이 김명민의 복귀다. 그는 아버지가 일군 조직폭력집단을 양지의 거물기업으로 탈바꿈시킬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하며, 주도면밀한 인물이다. 하지만 1회부터 둘째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알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1회에 아들의 부고를 듣고 담배만 태우던 그의 차가운 눈빛이 영안실에서 관계자가 물러간 후 오열로 바뀔 때, 시청자들은 보는 이의 호흡을 잡아가는 김명민의 진가를 볼 수 있다.



그는 압도적이고 차가운 보스의 카리스마를 구현하기 위해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6㎏을 증량했다. 그리고 몸도 가꿔 교도소 안 탈의장면에 대비했다. 그는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 직접 그러한 몸이 됐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에 선 굵은 외모 그리고 나지막한 특유의 목소리가 더욱 돋보이는 연기는 김강헌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카리스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강헌은 주도면밀함도 있다. 1회 둘째의 사망소식에 폭주하는 첫째 김상혁(허남준)이 엉뚱한 사람을 해코지할 때, 신고 음성에서의 천식 기침을 듣고 그를 조용히 용의선상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4회에서는 맞닥뜨린 송판호가 경찰에 체포된 김상혁의 석방을 걸고 협상에 나서자, 계약서 명목으로 눈앞의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로 그 증거영상을 남기는 치밀함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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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의 연기에서 카리스마는 항상 함께 가는 ‘외투’와 같았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무명의 시절을 지나 결국 연기를 포기하려 할 때쯤 그를 구원한 것은 ‘카리스마’의 이순신이었다. ‘불멸의 이순신’에 이어 ‘하얀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드라마의 제왕’ 앤서니 김 역시 모두 김명민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강직한 연기만큼 그는 부드러운 연기에도 능했다. 주로 영화에서 많이 비쳤는데 시한부 환자를 연기한 ‘내 사랑 내 곁에’, 코믹한 조선의 탐정을 구현한 ‘조선명탐정’ 시리즈, 집념의 마라톤 선수였던 ‘페이스메이커’, 사투를 벌이는 가장이었던 ‘연가시’ 등 많은 작품에서 힘을 빼는 연기에도 능했다.

사진=스튜디오지니사진=스튜디오지니


하지만 이러한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캐릭터는 더욱 많았으며, 그는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잘 보지 못했던 ‘부성애의 화신’으로서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는 그의 진짜 생활과도 연결돼 있는데, 연기를 잠시 쉬던 2~3년의 시간 그는 실제 아들의 청소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부성애에 집중했다. 그런 그에게 부성애의 화신인 ‘유어 아너’ 속 김강헌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역할이었을지 모른다.

압도하라면 압도하고, 꿰뚫으라면 꿰뚫는다. 김명민의 재등장은 오랜만에 프레임을 꽉 채우는 배우의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거기에 그 눈빛의 끝에는 적수 손현주의 존재가 있고, 그 역시 ‘한 연기’라면 둘째가가 서럽다.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여름, 두 부성애의 맞대결이 더욱 불꽃이 튄다. 이 대결은 지금 대한민국 드라마가 가진 에너지의 최대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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