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가는 박훈정 월드

머니투데이 정명화(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8.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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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이 된 '마녀', 그러려니 해도 황당한 세계관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마녀'가 쌓아올린 세계관을 잇는 스핀오프 '폭군'이 지난 14일 베일을 벗었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폭군'은 '마녀'와 '마녀2'로 여성 액션 영화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김다미, 신시아에 이어 세번째 헤로인으로 역시 무쌍의 가녀린 이미지를 가진 배우 조윤수가 '마녀'로 낙점됐다.

총 4화의 에피소드로 선보인 '폭군'은 대부분의 회차 러닝타임이 30분대로 극장판 장편영화와 비슷한 분량이다. 부담없이 가볍에 완결까지 감상할 수 있는 러닝타임에는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폭군'의 마지막 샘플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에 얽인 조직과 인물들의 사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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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오프닝은 '귀공자'로 박훈정 감독과 첫 인연의 물꼬를 튼 김선호가 맡았다. '폭군 프로젝트'의 수장인 '최국장'으로 분한 김선호는 '귀공자'에 이어 섬세하고 젠틀한 외양 속에 강한 투지를 가진 캐릭터를 선보인다. 여기에 차승원이 은퇴한 전설의 현장 요원 '상' 역을 맡고, 김강우 역시 '귀공자'에 이어 박훈정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폭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회사'가 미국 정보조직 '헤드원'에 의해 초토화되고 마지막 남은 샘플도 그들 손에 들어갈 위기 속 사면초가에 처한 최국장. 헤드원의 샘플 운송 정보를 마지막으로 전한 '권여사'(장영남)는 금고를 탈취할 기술자로 '채자경'(조윤수)을 최국장에게 소개한다. 오빠의 인격까지 갖고 있는 다중인격의 소녀 자경은 얼마 전 은퇴를 준비하던 아버지의 참혹한 시신과 마주한다. 홀로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자경을 찾아온 '연모용'(무진성)은 문제의 금고 탈취 건을 의뢰하고, 금고를 손에 넣자 자경을 없애려 한다. 하지만 목숨을 건진 자경은 복수를 위해 연모용을 찾아나서고, 샘플의 행방을 두고 헤드원 소속 '폴'(김강우)이 직접 나선 가운데, 최국장과 국정원, 자경과 헤드원, 그리고 프리랜서 킬러 '임상'(차승원)까지 합세하며 긴박한 추격전이 펼쳐진다.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신선한 액션 영화로 화제를 모은 '마녀'와 세계관을 공유한 '폭군'은 '마녀'의 초인간 프로젝트의 기원을 그린 작품이다. 애국심과 집념, 근성으로 미국의 감시를 피해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최국장의 손에서 만들어진 초인 샘플과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폭군'의 서사를 담고 있다.


에피소드 초반 '폭군'은 한명씩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의 캐릭터를 소개하듯 비추며 비밀스러운 '폭군' 프로젝트의 베일을 한겹씩 드러낸다. 박훈정 감독의 새로운 여전사로 분한 조윤수는 다중인격을 가진 차가운 소녀 킬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하드보일드한 액션과 수위 높은 폭력 신을 거침없이 연기하며 다소 어색하지만 신선한 모습으로 '마녀'의 타이틀을 이어간다. 그러나 작품 결말부에 등장하는 서사를 위해 설정한 듯한 다중인격 캐릭터는 '자경'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감소시키고 극중 긴장감을 깨뜨리는 요소로 아쉬움을 준다.

'폭군',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가는 박훈정 월드


이외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박훈정 감독의 기존 작품들에서 보아온 캐릭터를 답습하며 박훈정 세계관을 이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강우는 '귀공자'에서 목적을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다가도 위기의 순간에 비열하고 굴종적인 악역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댄디하고 지적인 모습의 김선호 역시 '귀공자'의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항상 경어와 예의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해결사 차승원도 '낙원의 밤'이나 '독전'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무겁고 폭력적인 추격전에도 등장인물들이 유머를 잃지 않는 박훈정 감독 특유의 분위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충무로의 소문난 각본가답게 대사의 말맛과 치고받는 합이 발산하는 재미는 상당하다. 한가지 목적을 위해 충돌하는 다양한 이해집단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어두운 인간 심리 역시 긴장감과 스릴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폭주하는 인물들의 감정 흐름이나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이고 급작스럽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폭군 바이러스를 접한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은 크리처 장르를 연상시키며, ‘마녀’와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흉물스럽고 이질감을 유발하는 크리처는 '폭군' 프로젝트의 엄중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로부터 공감을 자아내기 힘들게 한다. 또 바이러스가 숙주에 침투하는 과정이나 이후의 변화된 모습, 숙주를 잠식해가는 설정은 영화 '베놈'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의 모든 빌드업과 에너지가 응집되는 폭군의 탄생 순간에도 호감을 반감시키는 비주얼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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