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이 14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의료저달체계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
박 이사장은 14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개최한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환자 보호자로서 의사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를 주제로 발표하며 자신의 이런 경험을 담담히 털어놨다. 그는" 의사이고 병원의 이사장지만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도 중증 환자가 갈 곳이 없더라"라며 "환자 쏠림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은 늘 있었지만, 당사자가 돼보니 정말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이 14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의료저달체계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
문제는 2000년대 이후 '세 가지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 도입, KTX 등 교통 인프라의 발달, 대학병원의 확장 경쟁이 맞물리며 필수·지방 의료가 붕괴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는 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넘어서는 등 건강보험 재정이 말라가고 있다.
박 이사장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달라지고, 의료 이용량이 증가하는 '정해진 미래' 속에서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경제 성장이 더뎌져 GDP 대비 의료비는 급증하고, 복합 질환을 앓는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해 시간·경제적 부담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각 지역의 1차, 2차 의료기관이 살아나고 제대로 기능해 환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의료의 질, 접근성, 비용 모든 것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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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단계별 이송 체계 확립해야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빅5' 병원으로 쏠림 현상을 억제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 박 이사장은 상급종합병원 위주의 수가(의료행위 대가), 평가 체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증과 중증을 가리지 않고 '큰 병원'은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더 주고 있고,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하다 보니 시설·인력·장비가 부족한 1차, 2차 병원이 낮은 점수를 받아 환자 신뢰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상급종합병원도 제도에 맞춰 역할을 수행할 뿐이지만 이대로라면 규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기능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료전달체계는 1차, 2차, 3차 병원으로 구분돼 있지만 실질적인 의료이용체계는 2단계다. 1차에서 2차로, 2차에서 3차로 환자를 의뢰하는 구조가 아닌 1차와 2차가 모두 3차 병원에 환자 전원을 의뢰한다. 이 역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 이사장은 "진료 의뢰서를 잘 쓰면 1차에서 직접 3차 병원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환자를 보낼 때 수가를 더 주며 '칭찬'한다"며 "환자가 간다는 걸 막을 수는 없어도 정부가 지원할 일은 아니다. 지역 내에서 1차에서 2차, 2차에서 3차로 단계별 의뢰·회송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경기 부천시 부천세종병원을 방문, 의료진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조수정
박 이사장이 환자 쏠림 억제를 위해 환자가 아닌 의사의 인식 개선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그는 "의료 소비자인 환자에게 비용 부담을 높이는 방안은 실손보험 때문에 안 되고, 진료 지역을 제한하는 것은 지금처럼 지역 의료가 약해진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며 "의료 공급자인 의사에게 지역 내 환자 의뢰 시 보상을 강화하는 식으로 유인하면 입소문이 나면서 역량이 충분한 2차 병원이 재기하고 이를 통해 지역 의료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의료의 지역화, 의뢰의 단계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속히 이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