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GPU와 생성형 국가 거버넌스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4.08.1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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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시스템반도체, 특히 GPU(Graphics Processing Unit)의 설계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비디아다. 전 세계 GPU 공급물량의 90% 이상이 대만의 TSMC가 위탁생산하는 엔비디아 제품이라고 한다. 지난 1년 새 주가가 2배 이상 뛰어 최근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왜 하필이면 GPU일까. 가장 중요한 반도체는 시스템 전체의 작동을 제어하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 아니었던가.

단순한 그래픽 처리장치로만 치부되던 GPU가 CPU를 넘어 인공지능 혁명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배경에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등장이 있다. 데이터분석과 패턴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위해서는 여러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명령어 순서에 따른 처리방식에 특화된 CPU보다 다수의 명령어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에 특화된 GPU가 이런 임무에 더 적합하다.



GPU 작동방식의 핵심은 연계와 분산이다. CPU가 명령을 내리면 GPU는 그에 따라, 하지만 독립적이고 분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GPU 전략은 과부하된 CPU처럼 비효율적이고 느리며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에도 응용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을 정점에 둔 '소용돌이 정치'(politics of vortex)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준다. 한국 정치는 사회 각 부문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조정하지 못한 채 '기승전-대통령선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최근 당대표 선거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여야를 막론하고 오로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치열한 욕망만 남았다. 대통령을 겨냥한 각종 특검법안 중에서도 영부인에 대한 특검논란이 단연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한국정치 드라마 '돌풍'이 보여준 극단적 음모와 배신의 소용돌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의 뿌리는 용산이 움켜쥔 과도한 권력과 과욕에 있다. 1990년대 초 세계화와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민간과 지방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완화하고 폐지하는 노력이 시작됐다. 국가 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혁신도시, 거점도시, 행복(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교통·물류망 확충에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대통령바라기' 문제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전봇대'(이명박) '손톱 밑 가시'(박근혜) '붉은 깃발'(문재인) 하나를 뽑는데도 대통령 입만 바라보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현 정부의 의료대란도 마찬가지다. 관료, 의사, 환자 모두 용산만 바라본다.



CPU 역할을 하는 대통령제를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중심 국가 논리회로에는 문제가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제 일을 하고 민간과 공공부문의 수많은 '코어'는 GPU 작동방식에 따라 국가전략과 비전에 연계되면서도 각자 독립적인 '혁신의 화살'(arrow of innovation)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소용돌이 정치와 그 돌풍 너머에 우리의 잠재력을 최적화할 수 있는 '생성형' 국가 거버넌스의 모습을 그려본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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