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게 만병통치약?"…140만원 베트남 침향, 패키지 여행객 뒤통수쳤다[르포]

머니투데이 베트남 다낭=유엄식 기자 2024.08.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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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 시내 한 침향, 노니 판매관 내 강의실 전경. 이런 작은 공간에서 판매자가 1시간 이상 여행객에게 판매 권유 강의를 진행한다. 기자가 방문한 침향 쇼핑센터 내부도 이와 거의 비슷했다. /사진=네이버블로그 캡쳐.베트남 다낭 시내 한 침향, 노니 판매관 내 강의실 전경. 이런 작은 공간에서 판매자가 1시간 이상 여행객에게 판매 권유 강의를 진행한다. 기자가 방문한 침향 쇼핑센터 내부도 이와 거의 비슷했다. /사진=네이버블로그 캡쳐.


"이거(침향) 드시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한 번에 해결됩니다. 3개월분 드신 후에 병원 가서 검사받아 보세요. 아마 수치가 정상으로 될 겁니다. 그러면 기존에 먹던 약을 조금씩 끊으셔도 됩니다."

이달 초 다녀온 베트남 다낭 3박 5일 패키지여행 마지막 날, 가이드 안내로 방문한 다낭 시내 한 건강기능식품 판매점에서 본인을 "한의대 나왔다"고 소개한 판매자(한의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가 한 말이다.



장기간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대표 만성 질환인 당뇨를 불과 3개월 만에 호전시킨다는 게 의약품도 아닌 건강기능식품이라니.

'의심병'이 깊은 소비자가 의식됐던가. 판매자는 "침향을 먹으면 체내 혈전(피떡)이 녹고, 혈당이 정상화되는 걸 보여주겠다"며 물컵 두 개에 침향 캡슐 1알과 오메가3 1알을 각각 넣었다. 작은 스티로폼 조각을 혈전으로 생각하라면서. 채 1분도 지나기 전에 침향을 넣은 물컵 위의 스티로폼 조각이 녹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50~60대 중장년층 동반 여행객들이"와~"하는 감탄사와 함께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약 6평 규모의 작은 공간에서 패키지여행 중인 관광객 28명이 1시간 넘게 열변을 토하며 침향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판매자의 강의를 들었다. 이윽고 공개한 판매 가격은 3개월분 기준 미화 1000달러, 당시 환율을 고려하면 약 140만원이었다.
네이버쇼핑에 등재된 베트남 침향 관련 제품. 3개월 분이 300만~400만원을 호가한다. /사진=네이버쇼핑 캡쳐네이버쇼핑에 등재된 베트남 침향 관련 제품. 3개월 분이 300만~400만원을 호가한다. /사진=네이버쇼핑 캡쳐
판매자는 "오직 베트남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특가"라며 네이버를 검색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네이버쇼핑에선 같은 제품 3개월분이 309만원에 판매 중이었다. 쿠팡 로켓배송까지 된다고 한다. 국내 판매가의 3분의 1 수준에 노니까지 덤으로 주는 파격 제안. 기자는 결국 사지 않았지만, 동행했던 한 가족은 침향 한 상자를 사 들고 다음 쇼핑 장소로 이동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베트남 침향이 판매자 말처럼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를 낼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구하기 어렵다는 판매자 말과 달리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40만원을 호가한 제품이 30만~40만원 내린 가격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중고 매물로 올려져 있다. 급매를 원하는 매도자는 반값 이하 가격을 제시한다.

판매 이유가 '부모님이 베트남 여행 가서 샀는데 이미 드시는 다른 약이 있어서 불가피하게 처분한다'는 내용이 많다. 이외에도 고가의 베트남 침향 구매 문제로 현지에서 가족끼리 다퉈 여행을 망쳤다거나, 판매자와 가이드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 강매당했다는 사연도 있다.


판매자 말대로 베트남 침향을 먹으면 각종 질병이 완치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장 광고'에 가깝다. 이미 국내 유명 기업에서도 침향을 넣은 환, 앰풀 형태의 건강기능식품을 판매 중인데 이들처럼 "병을 낫게 한다"는 광고하지 않는다. 효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처럼 광고하면 '불법'이어서다.

특히 베트남 침향 판매자들이 "대기업보다 자사 제품의 침향 농도가 훨씬 우수하고 한국 식약처가 공인했다"고 홍보하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침향은 침향나무에 자연재해, 곤충, 동물 등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자연 치유하기 위해 나무가 만들어낸 수지를 의미한다. 최대 20m까지 자라는 침향나무에서 소량만 추출되는 고가 약재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이 주산지다.

현재 식약처 식품공전에 등록된 침향은 2종인데 이 가운데 하나인 말라센시스종의 주산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다. 이외 다른 1종의 원산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베트남 침향이 인도네시아 침향보다 효과가 탁월하다", "식약처 식품 공정에 베트남산 침향이 등재됐다"는 등의 주장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침향으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으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의약품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현 순천향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증의 당뇨, 고혈압 환자가 기존에 먹던 약을 끊고 침향이 함유된 건강기능식품으로 대체한다면 오히려 건강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패키지여행에서 관광객들이 원치 않는 옵션 상품과 쇼핑센터 방문이 포함된 이유는 뭘까. 여행업계 관계자는 "패키지여행 중 강매 피해 사례 접수는 주로 중저가 상품에서 많이 나온다"며 "이런 상품은 랜드사(현지 여행사)와 가이드가 마이너스 옵션(랜드사와 가이드가 여행비용 일부를 부담하고 고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모객한 여행객을 상대로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영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다낭 시내 전경. /사진=유엄식 기자베트남 다낭 시내 전경. /사진=유엄식 기자
그는 "중저가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간 소비자가 옵션을 선택하지 않거나 쇼핑센터에서 제품을 사지 않으면 가이드와 랜드사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강매, 강권 사례가 적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행태는 수십 년째 이어져 여행 업계 관행으로 굳어졌다. 고객 불만이 점차 늘어나자 코로나 직후 대형 여행사를 중심으로 가격대가 다소 높더라도 좀 더 자유롭게 여행하는 '무옵션, 무쇼핑' 패키지 상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랜드사와 가이드의 반발로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여행사가 현지 가이드를 직접 고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침향, 커피, 계피 등 여행지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쇼핑센터에서 파는 상품의 수수료는 10~40% 선에 형성돼 있다"며 "만약 한 패키지 팀에서 2000만원어치를 쇼핑했다면 가이드와 랜드사가 최대 800만원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속칭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보다 적은 고정 급여를 받는 직고용 계약을 기피한다는 것.



강매 행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면서 초저가 패키지 상품 선호도가 줄어드는 추세다.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패키지여행에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좀 더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요즘에는 무옵션, 무쇼핑 상품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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