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온 나라를 떠나 유학이라는 핑계로 무작정 정착한 뉴욕에서 작가 김홍빈은 혼돈과 불안감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분명히 터져 나왔는데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수시로 커졌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떠돌며 받은 자극과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과장된 색감으로 표현했다. 노스텔지어의 형상화다. 그걸 '네임리스 코쿤(Nameless Cocoon)'이라고 이름 붙였다.
맥락을 들어보니 터진 것은 유기체일 수도, 그저 탈피돼 생명력을 잃어버린 껍데기일 수도 있다. 다만 균열 직전까진 적어도 새로운 어떤 소중한 걸 감싸던 보호막이다. 터뜨리기 전까지 겹겹이 싸맸던, 그 플랫폼엔 삶과 죽음의 서사시가 있다.
이른바 '피쉬 대가리'라고 형상화된 이들은 두 손가락으로 잔을 들어 목구멍을 축인다. 짐짓 기품 있게 술잔을 쥔 모습이다. 그러다가 너무 만취했을까, 아예 잔속에 빠진 고주망태도 있다. 페스티발에서 열심히 먹고 마시며 흔들어대던 그들은 한가롭게 낮잠을 자거나 놀랍게도 책을 읽는다. 문득 귀여운 캐릭터처럼 보였던 생선 대가리가 무척 고매한 영혼인줄 알았던 내가 아닐까 하는 대입을 해본다. 껍질 밖으로 퍼져 나온 붉은 색 본질은 그런 부끄러움인가 보다. 생선 대가리보다는 좀 더 고상하게 살고 있다고 여겼던 게 실은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용은이 그린 대상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스스로 찾아 헤매는 작은 자유와 여유다. 그는 "복잡한 생각이 없어도 좋을 듯한 물고기 가면을 쓰고, 핑크빛 날것의 살덩이를 드러냈다"며 "작은 술 한잔과 함께 짧은 오수를 즐길 줄 아는 대리자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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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일상을 이질적이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페르소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온하고 행복하고 여유롭다.
김홍빈 권용은 작가는 '슬라이스 오브 워터멜론(Slice of Watermelon)'이라는 이름으로 뉴욕 트라이베카의 스테파니김 갤러리에서 오는 9월 7일까지 2인전을 연다. 한국에서 홍익대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배우자들과 함께 맨해튼으로 건너와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석사를 마친 신진작가들의 뉴욕 데뷔전이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20여년간 활동하다 최근 뉴욕 트라이베카에 정착한 김승민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올해 초 가수 권지안(솔비)과 이민우(신화) 등 이른바 아트테이너들의 맨해튼 소호(Soho) 데뷔를 주도해 성공시켰던 김 큐레이터는 이번 2인전을 상큼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김 큐레이터는 "젊고 역동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한국 출신의 신진 작가들을 뉴욕에 소개하고 싶었다"며 "에너지가 넘치고 새로운 화법으로 창의적 시선을 뿜어내는 작품들에 대한 뉴욕 컬렉터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