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판결문의 현명한 공개 해법 찾을 때다

머니투데이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2024.08.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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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법원 판결문 전면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찬성 측은 국민에게 인공지능 기반의 더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법원 판결문 전면공개는 불가피하고 국민의 알권리에도 부합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법원 판결문에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어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를 주장한다.

부정확한 분석이나 흑백논리식 논의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서 판결문을 무료로 전면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재판 공개가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판결문 전면 무료공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는 의문이다. 각 논거나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기된 문제가 해결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 보다 실천적이고 미래지향적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판결문 전면공개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미국의 경우 선례구속의 원칙에 따라 판례가 분쟁해결 기준으로서 하나의 법원(法源)이기 때문에 전면공개가 마땅하고 공적 기록 공개가 미국의 법문화라는 점도 한몫한다. 미국 연방법원 판결은 헌법과 법원의 관행에 따라 재판절차에 대한 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전면공개되고 예외로 미성년자 보호나 영업비밀 등의 사유로 제한되기도 한다. 연방법원 판결은 PACER라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전자적으로 열람이 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 페이지당 0.1달러, 기록당 최대 3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은 재판소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 판결 중심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법무성은 최근 민사 판결문의 데이터베이스화를 검토 중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대법원은 2000년 1월1일부터 민형사 판결문을 검색 가능한 PDF 형태로 공개하지만 하급심 판결문은 각 법원의 재량으로 주요 판결 중심으로 공개한다. 영국의 경우 대법원 판결은 전면공개하되 하급심 판결은 선별적으로 공개한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 리더십 확보에 열을 올리는 영국은 국립문서보관소가 영구보존·공개를 위해 선택된 법원의 판결을 법원으로부터 수신해 공개하는데 파인드케이스로(Find case law)라는 서비스를 통해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표준화한 XML 형식으로 제공한다. 일반 국민은 무료로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컴퓨터 분석을 위해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할 때는 연구·개발 라이선스나 거래 라이선스를 통해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판결문 공개가 개인정보의 합법적 처리의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우리나라도 적지 않게 판결문을 공개한다. 특히 판결서 인터넷 통합열람·검색서비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임의어 검색을 통해 비실명화한 판결서 열람이 가능한 점에서 무턱대고 사법부를 비난할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을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법률가의 일하는 방식에도 혁신을 가져와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고 전관예우 방지 및 국민의 사법 접근성 제고와 알권리 보장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판결문 공개는 전면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특히 학습용 데이터로 활용 가능한 표준화한 방식으로 판결문 데이터셋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공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침해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공개를 반대하는 근거로 삼지 말고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개인정보의 합법처리 근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입법적 개선을 검토해야 하며 영국처럼 라이선스제도 도입을 고려하거나 최신 기술을 통해 이름 등의 식별성 높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인공지능 학습에 방해되지 않는 방식을 적극 개발·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공개범위를 더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더이상 판결문 전면확대 여부만을 두고 다투지 말고 어떻게 하면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안전하게 판결문을 전면공개할지 현명한 공개의 방법론을 논의해야 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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