휩쓸린 가족 못 구하고 발동동…지리산 물폭탄에 103명 '대참사'[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2024.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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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8년 7월 31일 여름휴가를 떠난 많은 사람이 지리산으로 몰렸다. 대원사 계곡에만 무려 1400명이 모여들었다. 물놀이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 무렵,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잠을 자던 야영객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내려갔다. 이날 지리산에서만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색 작업을 하던 소방관들도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서 온 야영객, 마을 주민 등 103명 사망
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7월 31일 밤과 8월 1일 새벽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함양군, 하동군 일대 지리산권에는 최대 시간당 145㎜에 달하는 집중 호우가 내렸다. 계곡 등지에서 잠을 자던 야영객들과 계곡 인근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급격히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숨지거나 실종됐다.

여름휴가 시즌인 7월 말과 8월 초에 국내 대표 피서지로 유명한 지리산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였기에 피해가 컸다. 사망자 대부분은 계곡에 피서를 온 가족 단위 야영객들이었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자신은 빠져나왔는데 물에 휩쓸려가는 가족을 구조하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다. 사고가 발생한 1998년은 IMF를 겪을 당시라 호텔이나 펜션이 아닌 야영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이 한밤 중 대폭우로 지리산에서만 사망자 63명, 실종자 10명이 발생했다. 지리산 계곡과 연결되는 덕천강 일대에서도 세월교를 통해 덕천강을 건너 대피하려던 일부 차량이 순식간에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도 폭우로 산사태로 발생해 집에 있던 주민들이 쓸려가거나 매몰돼 숨졌다. 이날 폭우로 인근 지역을 포함해 지리산 주변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총 103명에 달했다.

사천소방서 소속 구조대원 이정근 소방장과 이내원 소방위도 "떠내려가는 승용차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색 작업을 하던 중 물에 휩쓸렸다. 10여분 만에 구조됐지만, 이 소방장은 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으며 이 소방위는 뇌사 판정을 받고 2주 후 결국 사망했다.

안전불감증, 늑장 예보, 부실 공사 어우러진 '인재'
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마른하늘의 날벼락식으로 퍼부은 이때의 폭우로 '게릴라성 기습폭우'라는 용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중국 양쯔강으로부터 수증기가 밀려와 엘니뇨 현상에 따른 바닷물 변화가 대기를 불안정화 시킨 상황에서 지리산 줄기에 부딪히며 한꺼번에 쏟아진 게 폭우의 원인이 됐다.


단순 자연재해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 구역에서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정황을 분석하면 안전불감증과 안일한 대처, 부실 공사, 늑장 예보 등이 어우러진 총체적 인재였단 평가가 많다.

실제로 일부 피서객은 입산과 야영이 금지된 지역에 몰래 들어가는 등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역시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바로 대피 조치, 구조 활동을 벌이지 않고 1~2시간 후 겨우 대피 방송을 시작하는 등 허술하고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경보장치들이 고장나있어 사람들에게 대피해야 한다는 신호가 제때 닿지 않았다.



참사 이후 기상청은 "집중호우 직전 중앙재해 대책본부에 3차례 전화해 집중호우 가능성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재해 대책본부가 "전화 통지는 공식주의 촉구가 아니며 참사 지역을 특정한 것도 아니었다"고 맞서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 됐다.

기상청의 낙후된 장비와 늑장 예보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기상청이 7월 31일 밤 10시 30분을 기해 전남 내륙과 전북 지방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지만, 순천시와 지리산 등 전남 동부 내륙 지방에는 이미 40분 전인 밤 9시 50분부터 1시간 동안 140㎜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첨단 기상장비와 시설의 부족이 원인으로 지적돼 슈퍼컴퓨터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유족에 11.3억 배상…경보시스템 개선
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1998년 7월 31일 밤 폭우로 지리산 일대에서 야영객 등 10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사고 발생 후 사망자 유족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단이 대피 방송도 하지 않는 등 피서객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족들에게 11억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불가피한 자연재해라 할지라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이 사고로 경보기만 2개 있었던 대원사 계곡에는 자동 음향 경보 시스템이 65개로 증설됐다. 지형에 따라 강우량이 14~22㎜를 넘으면 무선으로 연결된 자동경보장치가 작동하도록 한 것. 경보 시스템이 전무했던 피아골에도 우량계 13개와 자동 경보계 20개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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