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한국 뒤흔든 '신창원 신드롬'…907일 도주의 끝은[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박효주 기자 2024.07.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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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9년 7월 16일 신창원 검거 당시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1999년 7월 16일 신창원 검거 당시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


1999년 7월 16일 오후 5시 20분쯤 전남 순천시 조례동 한 아파트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됐다. 파란만장했던 도주극이 2년 6개월(907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희대의 탈옥수로 불리는 신창원은 도주 중에도 숱한 화제를 뿌렸고 그의 검거는 세기말 분위기가 겹치며 '신창원 신드롬'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통풍구 통과를 위해 석 달 간 체중 20㎏ 감량
1997년 1월 20일 새벽 3시쯤 무기수 신창원이 탈옥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 3명과 모의해 서울 주택가에서 강도 짓을 벌였다가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서울구치소를 거쳐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가 5년 뒤인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됐다.

이곳에서 탈옥을 기획한 신창원은 모범수로 지내며 교도관 눈을 피해 은밀하게 움직였다. 창고에서 몰래 들여온 쇠톱을 이용해 매일 음악방송이 나오는 시간마다 20분씩 천장 통풍구 쇠창살(직경 1.8㎝)을 잘라냈다.



좁은 통풍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체중도 줄였다. 기존 80㎏이던 체중을 3개월 만에 60~65㎏까지 감량했다.

파란만장 907일간 벌인 도주극…경찰 97만명 동원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
교도소를 나온 신창원은 한 농가에서 양복과 구두, 흉기를 훔쳤다. 이후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으며 택시 기사를 위협해 차비를 내지 않고 되레 1만원을 빼앗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도피 행각은 907일간 이어졌고 이 기간 그가 돌아다닌 거리는 4만여㎞였다. 도피 기간 그가 경찰과 맞닥뜨린 것도 여섯 차례나 됐다.


신창원이 탈옥 후 처음 경찰을 맞닥뜨린 것은 탈옥 9개월만인 1997년 10월 18일이다. 은신처를 제보받은 경찰은 충남 천안시 목천면에서 귀가하던 신창원을 덮쳤으나 실패했다.

신창원은 바로 경기 평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경찰은 같은 해 12월 30일 시민 제보에 또 한 번 체포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신창원은 경찰과 격투 과정에서 손목 골절상을 입기도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8년 1월 귀경차량 틈에 끼여 대전으로 이동한 신창원은 과거 동거녀에게 전화했다가 경찰에 포위당했다. 하지만 그는 경찰로부터 권총까지 탈취해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경찰은 약 2달 뒤인 3월 6일 전북 김제에서 검문 검색을 통해 신창원을 포착했지만, 또 놓치고 말았다. 그해 7월 신창원이 또 포착된 곳은 서울이었다. 그는 불심검문 하는 경찰을 뿌리치고 차량을 버린 채 도주했다.

당시 그를 잡으려고 동원된 경찰은 97만명에 달했고 뿌려진 수배 전단은 463만장이었다. 현상금은 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당시 최고액이었다.



한국 뒤흔든 탈옥 생활…신드롬으로 번지기도
1999년 7월 16일 신창원 검거 당시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1999년 7월 16일 신창원 검거 당시 모습.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그날 이야기' 갈무리
여섯 차례나 경찰을 따돌렸던 탈옥수 신창원은 1999년 7월 16일 한 가스 수리공 제보에 끝내 붙잡혔다. 신고받은 경찰은 50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다.

신창원 도주가 길어지며 우리 사회에는 '신창원 신드롬'이 확산하기도 했다. 탈옥 후 생활을 위해 100여건이 넘는 강도와 절도를 저질렀음에도 일부에서는 그를 '홍길동'이나 '일지매' 같은 '의적'으로 칭송했다.

또 그를 추앙하는 팬카페가 개설되는가 하면 시민들은 그가 검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뉴스 인터뷰에서 서슴없이 말했다. 검거 당시 신창원이 입었던 상의는 크게 화제가 되면서 유행하기도 했다.



2년 6개월 만에 붙잡힌 신창원은 검거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편해요, 그냥"이라며 덤덤하게 교도소로 향했다.

붙잡힌 신창원, 무기징역에 징역 22년 추가
대법원은 2000년 2월 신창원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확정했다. 앞서 선고됐던 무기징역에 형이 추가된 것이다. 신창원은 재판부에 "나 같은 범죄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신창원은 교도소에서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하며 모범수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1년 8월 경북북부교도소 독방에서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회복한 신창원은 지난해 5월 대전교도소에서 두 번째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3일간 치료받은 신창원은 다시 대전교도소로 복귀해 복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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