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금 26억 빼앗기고 숨져…여아 강간·살해 누명 쓴 15년 옥살이[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7.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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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15일.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사진)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사진=뉴스1 2013년 7월15일.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사진)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사진=뉴스1


2013년 7월15일.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박평균)는 "국가는 정씨에게 26억3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는 평온한 일상을 살다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를 당하고 가족마저 그릇된 낙인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을 겪게 된 정 씨의 손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고문·가혹행위한 뒤…경찰 "범행 자백했다"
/사진=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사진=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10월 강원도 시골에서 만홧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 A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A양은 그해 9월27일 오후 7시쯤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길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에는 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큰 파장이 일자, 내무부는 그해 10월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관계자를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경찰은 내무부 지시에 따라 용의자 30명을 무더기로 체포했고, 여기에는 정씨도 포함됐다. 당시 A양이 정씨의 만홧가게에 자주 드나든 게 원인이 됐다.


정씨는 "그날 아이는 만홧가게에 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다만 경찰은 사흘 동안 정씨를 나체로 봉에 매달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결국 10월10일 검거 시한을 앞두고 정씨는 검사에게 허위 자백을 했다.

경찰은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하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A양이 발견된 현장에서는 범인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15.8cm 길이 하늘색 연필과 머리빗이 발견됐는데, 경찰은 정씨의 아들과 만홧가게 종업원을 불렀다.



먼저 종업원을 구타하며 빗이 누구 것인지 물었고, 종업원은 "처음 보는 빗"이라고 했다가 계속되는 구타에 자신의 것이라고 진술했다. 종업원이 폭행당한 것을 본 정씨의 어린 아들도 연필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 39년만 '무죄'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경찰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호소했다. 각각 '빗'과 '연필' 주인으로 재판에 나온 종업원과 정씨 아들도 모두 허위자백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1973년 1심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하고 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같은해 11월 원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한 정씨는 15년 만인 1987년 성탄절을 앞두고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이후 박찬운, 임영화 변호사와 함께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01년 10월 "증인들이 진술을 번복한 내용을 믿기 힘들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찾아 진실 규명을 요구했고, 위원회는 2005년 1심 재판부였던 춘천지법에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 증거 조작 정황이 발견됐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춘천지법은 2008년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듬해인 2009년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으며, 2011년 10월27일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법원 "국가, 배상책임 없다"

/사진=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사진=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누명을 벗은 정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13년 1심 법원은 국가가 정씨에게 26억3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소멸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정씨는 형사보상금을 받고 6개월 이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아 권리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정씨는 진실을 밝히겠다며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번엔 자신을 고문한 경찰과 검사, 재판장도 함께 제소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부장 임태혁)는 2016년 11월 "경찰관 3명과 (일부 사망한 경찰관의) 유족이 23억 8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강압 수사와 고문, 회유, 협박 등 가혹 행위를 해 허위 자백을 받아 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국가의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과거사 정리법에서 정한 국가의 의무는 법령에 의한 구체화 없이는 추상적인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씨는 "현재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경찰관 자손과 가족에 무슨 죄가 있나. 왜 그런 사람들한테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나. 절대 그건 안 된다"며 항소를 포기했다. 아울러 배상금 역시 전액 받지 않기로 했다.



정씨는 2019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는 아들 재호씨에게 "법정에서 국가의 잘못이 인정되어야 한다. 정의가 살아 있는 한 국가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라는 말을 끝으로 2021년 7월28일 숨을 거뒀다. 향년 8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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