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AI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

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4.07.11 02:03
글자크기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최근 정국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여야의 대립이 마주 달리는 기관차와 같더니 결국 22대 국회는 개원식도 하지 못하고 멈춰섰다. 국회에서 다수가 된 거대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법적 절차를 통해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정부의 인구전략기획부와 정무장관 신설, 상속세 등의 감세 등 법제화가 필요한 대부분 정책은 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고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이나 탄핵은 대통령의 거부권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진다. 정치가 전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지지층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나아가 정쟁이 격화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대책,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기술 및 경제안보 위기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한 발짝씩 나가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AI 시대 디지털 세계는 어떨까. 먼저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긴 창작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술발전의 변곡점이 됐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보면 생성형 AI는 누구나 쉽게 창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개인의 능력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다만 AI의 활용능력에 따른 개인간 격차가 심화하면서 평등원칙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초지능 AI가 현실화할 경우 AI를 잘 활용하는 소수의 생산성이 극대화하며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 생성형 AI 시장의 성장에 따라 자본력을 갖추고 시장을 선점한 소수 거대 글로벌 플랫폼의 독점 심화에 대한 우려가 증대된다. 구글, 유튜브 같은 검색플랫폼과 메타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전 세계를 장악했다.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생성형 AI가 본격화함에 따라 이들의 독점은 더 가속화한다. 생성형 AI 모델을 보유한 소수 글로벌 플랫폼은 이용자와의 접점에서 이용자와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하고 제공함에 따라 새로운 게이트키퍼로 부상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플랫폼은 개인의 선호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가짜뉴스를 확산해 정확한 정보에 의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위협한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상품, 뉴스소비의 다양성을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성향도 양극화해 민주주의 전통인 상호존중과 합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원래 인터넷 확산으로 소수가 독점하던 정보를 다수가 공유할 수 있게 되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자유와 평등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거대 플랫폼이 정보전달과 정치적 담론형성에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결과적으로 가짜뉴스 확산, 필터버블, 개인정보 침해 등의 위험을 초래하며 특정한 주장과 관점을 증폭하거나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인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하거나 훼손하는 이념, 제도, 세력인 민주주의의 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전체주의와 독재주의, 권위주의,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부패와 정경유착, 정보조작과 선전, 테러리즘과 폭력, 경제적 불평등, 제도적 결함과 이의 악용 등이 포함된다. 오프라인 정치에서 극단적인 정치세력간 대립현상은 대부분 민주주의의 적들과 깊은 관련이 있고 온라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조작과 선전 역시 민주주의의 주적이 됐다.

권력투쟁에 몰두하는 정치세력간 대립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와 국민의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이 필수다. 그런데 공론의 장이 돼야 할 미디어가 플랫폼에 의해 장악되면서 감시와 비판의 기능은 축소되고 온라인 무질서는 오프라인 민주주의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이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거대 글로벌 플랫폼에 대해 이용자 보호, 공정한 경쟁 차원의 적정한 규제가 필요한 시기다.(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