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연9% 불렸는데"…'연금 부자' 호주도 은퇴자금 걱정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4.05.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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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 의무 기여금 급여의 11%, 전세계 부러움 산 퇴직연금제…
향후 10년간 수백만명 은퇴… 퇴직연금만으론 부족, 고갈 우려도

호주 시드니 달링하버 근처에는 맥쿼리그룹과 웨스트팩 등 금융사들이 밀집해 있다. 호주는 하나의 금융계좌로 주식과 펀드, 예금, 보험, 퇴직연금까지 한 번에 투자할 수 있는 랩어카운트 서비스가 보편화돼있다. 호주의 랩 시장 규모는 4175억호주달러(465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호주 시드니 달링하버 근처에는 맥쿼리그룹과 웨스트팩 등 금융사들이 밀집해 있다. 호주는 하나의 금융계좌로 주식과 펀드, 예금, 보험, 퇴직연금까지 한 번에 투자할 수 있는 랩어카운트 서비스가 보편화돼있다. 호주의 랩 시장 규모는 4175억호주달러(465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


3조7000억 호주달러(약 3315조원)에 달하는 호주의 '슈퍼 펀드'(super funds). 워낙 두둑한 지갑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산 퇴직연금 시스템이지만 고령화의 그늘에 호주조차 근심이 깊다. 슈퍼펀드만으로 은퇴자금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데 그마저 자금 고갈을 막을 묘안을 찾기 어려워서다.

32년간 고용주가 급여의 11% 의무 기여… 슈퍼펀드의 탄생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32년간 의무 기여금을 납부한 60대 초반 호주인들의 퇴직연금 계정 중 3분의 2는 20만 호주달러(1억80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들 은퇴 인구가 앞으로 3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은퇴 자금으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 자금을 어떻게 불릴지 또 자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할지 호주 정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호주는 고용주가 근로자 급여의 11%에 해당하는 기여금을 개인연금에 의무적으로 쌓아왔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들에 비히면 상황이 낫다. 이 같은 의무 기여금은 호주 근로자를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은퇴 저축인으로 만들었다.

호주와 달리 미국은 퇴직연금에 강제 기여금이 없고 영국은 최근에야 최소 기여금(고용주 5%+근로자 3%)을 강제로 도입했다.



지난해 6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테르에서 교통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17세 소년을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더 오래 일하고 연금 개혁 법안을 두고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전역에서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로이터=뉴스1지난해 6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테르에서 교통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17세 소년을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더 오래 일하고 연금 개혁 법안을 두고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전역에서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로이터=뉴스1
2031년까지 은퇴를 맞는 미국의 베이비부머 숫자는 무려 7000만명. 반면 미국의 사회보장기금은 3년 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게 받고 더 일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이 같은 시도는 프랑스에서 폭력 시위를 야기했고 아일랜드와 캐나다에선 야당이 개혁안을 무산시켰다. 공적 연금에 기댈 수 없는 미국은 블랙록처럼 금융업계의 은퇴투자서비스가 급성장했으나 상당수 근로자가 퇴직금을 따로 적립하지 않거나 적립해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출처=연금 한눈에 보기 2023: OECD 및 G20 지표/출처=연금 한눈에 보기 2023: OECD 및 G20 지표
호주의 퇴직연금제도(퇴직연금 보장제)는 1992년 호주 최대 노조와 고용주 간의 치열한 임금 협상 끝에 성문화됐다. 새 법에 따라 모든 고용주는 근로자의 퇴직 계좌에 첫 해 급여의 3%에 해당하는 금액부터 시작, 꾸준히 적립금을 넣어야 한다. 현재는 11%를 계좌에 적립하는데, 이 금액은 오는 7월 11.5%로 인상되고 내년에는 다시 12%로 인상될 예정이다.

이 계좌의 대부분을 관리하는 게 '슈퍼펀드'다. 주로 위험 허용 범위와 예상 은퇴 날짜에 맞춰 미리 혼합된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이직과 상관없이 운용 업체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의무 기여금 덕분에 호주의 퇴직연금 유입액은 주당 20억 호주달러를 넘어섰다. 2048년에는 총자산이 13조6000억 호주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7개의 호주 연금이 세계 100대 기관투자자에 속한다.


10년간 수백만명 은퇴, 호주도 인구통계 변화가 연금 위협
이들 슈퍼펀드들의 자금 규모가 커지다보니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인수·합병을 위한 딜메이킹에 참여하는가 하면,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900억 호주달러 규모의 슈퍼펀드인 C버스(Cbus)는 1984년 설정된 이후 연간 8.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호주의 퇴직연금이 부러움을 사는 배경엔 수십년에 걸친 양호한 수익률도 주효했다.

호주 푸르덴셜 규제 당국은 매년 성과 테스트를 도입해 부진한 슈퍼 펀드를 걸러낸다. 2년 연속 규제 당국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슈퍼 펀드는 신규 계좌를 받을 수 없다. 규제 당국의 강력한 모니터링 덕분에 수수료도 낮다. 호주인들은 2023년 6월까지 12개월 동안 약 39억 호주 달러의 투자 수수료를 지불했는데 이는 전체 펀드의 약 0.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구성원들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안심하고 은퇴할 권리, 국민연금 강화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구성원들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안심하고 은퇴할 권리, 국민연금 강화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하지만 호주 역시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연금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호주에선 수백만명이 향후 10년간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이들이 '슈퍼펀드'에 둔 자금은 전체의 4분의 1가량인 7500억 호주달러 규모다. 이들은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소위 보존연령이 되면 전액을 수령할 수 있다.

호주 재정자문협회의 최고경영자(CEO) 사라 아부드는 "현재로선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노령연금(age pension)에 의존할 것"이라며 퇴직연금이 큰 자금줄이 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호주가 퇴직연금을 도입한 데는 정부가 지원하는 노령연금의 부담을 덜기 위한 이유가 컸다. 이 부분에서는 성공적이다.

지난해 호주 정부는 인구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의 은퇴 자금 충당분이 늘어나 정부의 연금 지출이 40년 내 국내총생산(GDP)의 2.3%에서 2%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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