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그대론데 지갑 빵빵해졌다?…평택 '이 동네' 함박웃음 짓는 이유[르포]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2024.05.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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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의 시대④]미군들, 달러 받자마자 원화 환전…시장상인들도 '함박웃음'

편집자주 물가상승률이 장기간 높게 유지되면서 현물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금과 달러, 원자재, 사치품에 투자하는 '현물족'을 만나봤다.

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기지 앞 사설 환전소. /사진=정세진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기지 앞 사설 환전소. /사진=정세진


"몇달치 월세를 미리 환전해 놓는 동료들도 있어요."

권모 미 육군 대위(41·여)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근처에 산다.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딸린 55평(181.8㎡)규모 빌라의 한달 월세는 235만원 수준. 미군은 부대 밖 거주자에게 월급과 별도로 OHA(미군 해외주택 수당)를 달러로 지급한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주한 미군이 주둔한 평택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접근할 때, 미군은 이 시기를 '환율이 좋은날'이라고 부른다. 미군기지 담장만 넘어가면 체감 물가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환율이 좋은날, 미군들은 환전소에서 몇달치 월세를 미리 환전해 놓는다고 한다.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가 환율 흐름 예측해 외환트레이딩으로 수익을 내듯 미군과 미군기지 직원들도 작은 '환테크'에 나선 셈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지난 2일 기준 1377원까지 올랐다.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까지 오르며 2022년 11월7일(1413.5원) 이후 약 17개월 만에 1400원대를 기록했다.



강달러에 원화로 사면 과일·채소 반값…오일장 찾는 미군들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 오일장에서 한 미군 가족이 양파를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 오일장에서 한 미군 가족이 양파를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미군 기지 인근 시장도 활기를 띈다.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평택 팽성읍 '안정리 로데오 거리' 오일장. 일요일인 이날 100여m에 불과한 좁은 오일장 골목에 외국인이 몰려 빠르게 걷기가 어려웠다. 이날 오일장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하나 같이 달러강세로 소비에 여유가 생겼다며 "행복하다"(I'm so happy)고 했다.

오일장 인근 마트를 찾은 미군 G모씨는 "기지 안 쇼핑몰에서 고수 한 묶음을 사면 6달러인데 오일장에서 원화로 사면 반값에 살 수 있다"며 "환율이 오르면서 기지 밖 물가가 확실히 싸게 느껴진다"고 했다.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 열린 오일장에서 아보카도를 사고 있는 미군가족.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 열린 오일장에서 아보카도를 사고 있는 미군가족. /사진=정세진 기자
서울 여의도의 5.5배 크기(14.67㎢ )인 캠프 험프리스에는 학교와 체육시설, 쇼핑몰, 푸드코트, 병원, 주유소, 도서관 등 생활시설이 갖춰져 있다. 기지 안에선 달러로 생활한다. 달러가 강세일수록 원화 환전 수요가 늘어난다. 달러로 받는 급여는 그대로지만 원화로 환전 하면 기지 밖에서 구매력이 높아진다.

미군 남편을 둔 에버레인 보머씨는 "최근에 기지 밖에서 돈을 쓸 때 확실히 여유로워졌다"며 "기지 밖 환전소에서 원화로 바꾸고 오일장에 나와 과일, 채소를 사면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데릭 힉스 병장 부인은 "딸들이 이틀 연속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과일을 사러 왔다"며 "요즘 소비에 여유가 생겨서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 열린 오일장에서 과일을 사고 있는 데릭 힉스 병장(23) 가.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8일 경기 평택시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 열린 오일장에서 과일을 사고 있는 데릭 힉스 병장(23) 가. /사진=정세진 기자
부대 밖에서도 달러 쓰던 미군, 이젠 원화결제…외식물가도 '만원의 행복'
지난 28일 오전 한 미군 가족이 경기 평택시 안정리로데오 거리안에 있는 마트에서 원화로 과자를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8일 오전 한 미군 가족이 경기 평택시 안정리로데오 거리안에 있는 마트에서 원화로 과자를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한 미군이 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 안정리 오일장에서 치킨을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한 미군이 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 안정리 오일장에서 치킨을 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17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원달러 환율이 1100~1200원일 땐 미군도 부대 밖에서 달러를 썼고 상인들도 1달러 당 1000원으로 계산해줬다. 손님도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며 "1만원짜리 메뉴는 10달러를 받는 식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밖에서 달러 쓰는 미국인이 거의 없다"며 "달러 쓰면 손해인 걸 알기 때문에 다들 환전해서 원화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 레베카 케네디씨(47·여)는 기지 밖에서 식사한다. 그는 "기지 안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 것보다 밖에서 사 먹는 게 훨씬 싸다"며 "주로 야끼만두, 제육볶음, 비빔밥, 김치 볶음밥 등을 사 먹는데 한끼에 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몇달 전 한국에 왔다는 트래비스 벨로브라지드 대위의 부인은 "충남 아산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거나 오일장에서 물건을 사는데 미국 물가가 적용되는 기지 안 쇼핑몰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인 것 같다"며 "특히 계절 과일은 오일장이 훨씬 싸고 품질이 좋다"고 했다.

트래비스 벨로브라지드 대위(33)가 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 안정리로데오 거리 오일장에서 산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날 가족들과 파프리카, 사탕, 멜론 등을 샀다. /사진=정세진 기자트래비스 벨로브라지드 대위(33)가 지난 28일 오전 경기 평택 안정리로데오 거리 오일장에서 산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날 가족들과 파프리카, 사탕, 멜론 등을 샀다.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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