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2조원 넘는데 살 게 없네" 엔씨소프트의 M&A 딜레마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24.04.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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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와 박병무 공동대표. /사진=엔씨소프트(왼쪽)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와 박병무 공동대표. /사진=엔씨소프트


성장동력의 둔화로 새 먹거리를 찾고 있는 엔씨소프트 (176,100원 ▼1,900 -1.07%)가 M&A(인수합병) 대상을 물색하고 있지만 마땅한 매물이 나오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대표 IP(지식재산권) '리니지'의 외연을 넓힐 매력적인 게임 개발사를 찾아 글로벌 IB(투자은행)업계까지 총동원하고 있지만, 당분간 엔씨의 마음에 쏙 드는 대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국내외 투자업계 등에 지난해 말부터 '게임사 수배령'을 내려놓고, 인수 가치가 있는 업체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홍원준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주도하던 M&A 검토는 올해 3월부터 새로 취임한 박병무 공동대표에게 최종 결정권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의 M&A 추진 배경은 명확하다. 더 이상 리니지만으로 국내에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7798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31%, 75%씩 감소하며 역성장했다. 올해 역시 매출 역성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때 100만원을 넘어섰던 주가도 최근에는 10만원대를 전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엔씨는 게임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부족한 장르의 IP를 수혈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외 게임사를 M&A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지분투자와 더불어 게임의 퍼블리싱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병무 공동대표는 취임을 앞둔 사전간담회 및 주주총회 자리 등에서 수차례 엔씨의 M&A 기조를 밝혔다. 비게임 부문은 현재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즉시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체를 찾고, 게임 부문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미래 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게임 부문의 M&A 문턱을 보다 낮춰놨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M&A 협상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중소형 개발사들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 과거 유망기업으로 꼽히던 곳들은 이미 시장에서 성과를 인정 받고 체급을 올려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엔씨의 투자 여력은 충분한 상태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단기금융상품 1조1675억원, 현금 및 현금성자산 3652억원 등 총 2조3368억원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충분한 실탄만 믿고 과거처럼 '묻지마 투자'를 할 가능성은 적다. 2001년 엔씨 자산의 절반 수준인 480억원을 들여 인수했던 미국 데스티네이션게임즈(현 엔씨인터랙티브)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5년 넥슨과 함께 추진했던 EA(일렉트로닉 아츠) 인수전 역시 무산되긴 했으나 사운을 걸고 진행했었다. 하지만 인수 무산 이후 넥슨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는 등 회사 전체가 휘청거린 전례가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가 주력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와 겹치지 않는 장르, 시장과 고객이 중복되지 않는 업체들을 위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안다"며 "국내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리니지라이크' 양산업체들은 엔씨의 눈에 들 리가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엔씨가 가진 강남 부동산만 팔아도 중소 개발사 서너곳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나올 정도"라며 "엔씨의 M&A가 진척이 없는 건 그야말로 게임사 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이라는 방증이기에, 당분간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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