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ILO 공방…멀어져가는 '대화', 의료대란은 악화

머니투데이 박미주 기자 2024.03.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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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임현택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의과대학 증원 2000명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제노동기구(ILO) 개입을 두고 양측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동이라며 ILO에 개입을 요청했고 긴급개입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 반면 정부는 ILO의 회신이 단순 의견조회에 해당하며 정부가 강제노동 협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는 사이 의료대란은 악화하고 의정 간 대화는 요원해지는 양상이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지난 29일 당선 이후 첫 기자회견 자리에서 ILO 서한을 공개하며 "ILO가 전공의 사직을 금지한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에 공식 개입을 했다"며 "절차가 종결됐다는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는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말했다.



임 당선인은 서한에 대해 "ILO가 한국 정부 당국에 개입했고 인구통계학적 변화에 따른 의료개혁으로 이해되는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촉구했다. 절차에 따라 한국 정부가 보내오는 모든 정보를 전송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앞서 대전협은 지난 1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ILO 사무국이 대전협에 '의견조회 요청 자격 자체가 없음'이라고 통보하고 종결 처리했다고 했다. 이후 대전협이 ILO에 다시 개입을 요청했고 ILO가 개입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는 게 의협 얘기다.



임 당선인은 "공식 답변을 받고 보니 절차가 종결됐다는 고용부의 보도자료는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대국민 사기극 결정을 한 결정권자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협 차원에서 소송을 벌이겠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 뉴스1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 뉴스1
이에 고용부는 지난 29일 밤 다시 보도자료를 내고 임 당선인의 발언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고용부는 의협에서 얘기하는 것은 의견조회로 규정에 따른 공식 감독 절차가 아닌 비공식 절차라며 공식 감독·제재 절차가 아니라고 했다. 고용부는 "의견조회는 특정 사안에 대해 노사단체와 정부가 ILO 사무총장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 요청 내용을 해당 정부에 전달하고 의견을 구하며 정부가 의견을 제출하면 요청인에게 전달 후 종결된다"며 "ILO사무총장이 당해 사안을 판단할 권한은 없고 ILO 사무국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권고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용부는 또 "의견조회 절차를 통해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부당하게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거나 정부가 동 절차를 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ILO 의견조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ILO 제29호 협약 제2조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대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강제노동 적용 예외가 인정된다"며 "정부가 제29호 강제노동 협약을 위반해 부당하게 전공의들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거나, ILO가 강제노동 협약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는 취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대국민 사기극이란 주장에 대해 고용부는 첫 대전협의 의견조회 때 요청 자격이 없음을 통보해 종결처리한 것이 맞고 "정부가 대전협의 의견조회 재요청을 두고 종결 처리됐다고 한 바도 없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뿐 아니라 ILO의 개입 해석을 두고도 의정 간 갈등이 확산한 것이다.


이에 정부와 의사단체 간 협상 타결은 멀어지는 모습이다. 의사단체는 의대 증원 철회, 복지부 장·차관의 파면 등을 요구하며 면허정지의 유연한 처분 등으로 대화를 제안한 정부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앞서 임 당선인은 대화의 조건으로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파면,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대화의 장 마련에 걸림돌이 되는 박민수 차관을 언론 대응에서 제외하기를 촉구한다"며 "정부는 더 늦기 전에 현 상태 시작이 된 근거 없는 의대 정책을 철회하고 필수의료 미래인 전공의들에게 귀 기울여 진정한 대화의 장을 만들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조건 없이' 대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의사단체들이 대화 전 조건을 내걸며 의정 간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셈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해서도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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