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애니메이션 경쟁력은 '사람 이야기', 세계인 마음 울린다"

머니투데이 백재원 인턴기자, 김상희 기자 2024.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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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감독 인터뷰] '아가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영화 콩트르샹 경쟁 부문 진출

안재훈 감독/사진제공=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안재훈 감독/사진제공=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오징어 게임'과 '아기 상어'가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최고 인기작에 등극하는 등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애니메이션에 있어 또 하나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재훈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아가미'가 프랑스 안시에서 열리며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라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 영화제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하 안시 페스티벌)의 장편 영화 콩트르샹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이다. 안 감독은 2011년 '소중한 날의 꿈' 장편 경쟁 진출, 2020년 '무녀도' 장편 콩트르샹 부문 수상에 이어 아가미로 세 번째 안시 페스티벌에 진출하며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아가미는 소설가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삶의 끝에선 순간 아가미가 생겨난 소년 '곤'과 각각의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안 감독은 제작 발표에서 "살아오며 몸과 마음에 생긴 상처와 흔적이 결국 삶의 아가미가 돼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며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분들이 스스로의 아가미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안 감독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아가미의 안시 페스티벌 진출 의미에 대해 세계 관객에게 한국 작품에 대한 인상을 남기는 게 가장 크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 한국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이런 걸 만들었다고 알리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안시 페스티벌 진출을 통해 세계 관객들이 한 번 더 한국 애니메이션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만든 한국 창작자가 궁금해진다면 결국 한국 사람이 궁금해질 테고 그렇게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특히 안 감독은 이번 안시 페스티벌 진출이 그간 한국의 타 문화 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됐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성과로까지 이어지며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개봉하는 관계자들도 우리나라 사람을 보고 만든 우리 애니메이션이 많이 보여지길 바라지만,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산업적인 측면에서 수익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불안감이나 고민이 해외 상영과 해외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韓 애니메이션 경쟁력은 '사람 이야기', 세계인 마음 울린다"
안 감독이 꼽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사람의 힘이다. 숱한 난관을 극복해온 국민들의 이야기와 정서 그 자체가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하는 특징이 돼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차별화한 콘텐츠가 됐다는 설명이다.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은 보편타당합니다. 좋은 인력들이 충분한 제작비로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장인 정신이 뛰어납니다. 다만 일본은 어찌 됐든 계속 판타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민주화든 경제든 모든 것이 사람의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기에, 이러한 스토리는 언젠가는 다양성을 넘어서 특수성, 특별함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나 사회가 갖는 마음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이미 한국 창작자들은 어떻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계의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느리지만 분명히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도 사람과 사회를 대하는 한국 감독만의 태도로 국내 관객은 물론, 전 세계 관객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매일 책상에 앉아 작업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안 감독은 현재의 콘텐츠 시장 변화에 맞춰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을 만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당장은 더 많은 관객들이 아가미를 좋아하실 수 있도록 잘 마무리를 짓는 게 우선입니다. 순차적인 일정에 따라 부천 애니메이션 영화제 등도 준비하고, 개봉 준비도 해야 합니다. 또 극장용 '영웅본색' 애니메이션도 제작 중에 있습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숏폼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방안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한편 제48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6월 9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남동부 안시에서 개최된다.



◇안재훈 감독은?

1992년 애니메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해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부터 감독의 길을 걸었다. 이어 중편 '순수한 기쁨'(2000)을 통해 한국의 거리를 필름에 담기 시작했으며,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소중한 날의 꿈'(2011)에 1970~80년대 대한민국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중한 날의 꿈'으로 첫 안시 페스티벌 진출의 쾌거를 이룬 안 감독은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의 빈 공간을 채우고 한글로 쓰인 우리 문학이 애니메이션이 돼 전 세계에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단편문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소나기'(2017) 등 제작 기간만 10여 년에 이르는 프로젝트는 처음으로 안시 페스티벌 수상의 영예를 안긴 '무녀도'(2021)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필름 제작 시대부터 현재 AI(인공지능) 시대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빛깔을 유지하되 '낡은 경험'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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