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형제 승리 이끈 소액주주 말 들어보니 "주주가치 훼손 절대 안돼"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 2024.03.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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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이언스 주총 결과/그래픽=조수아한미사이언스 주총 결과/그래픽=조수아


한미약품 (316,500원 ▼2,000 -0.63%)그룹과 OCI (94,300원 ▼2,400 -2.48%)그룹의 통합을 놓고 벌어진 창업주 가족의 경영권 분쟁을 결정지은 것은 소액주주들이었다. 약 4%포인트(p) 차이로 승기를 쥔 형제 측을 도운 소액주주들은 그 이유로 주주가치 제고와 소통을 꼽았다.

2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28일 열린 한미그룹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34,000원 ▼600 -1.73%) 정기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주주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통합 반대인 형제 측 이사 후보들은 출석 의결권 수 대비 52% 안팎의 찬성을 받아 과반을 넘겼다.



이날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선 형제 측의 이사진 선임이 확정되자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형제 측은 "앞으론 소액주주란 단어를 안 쓰겠다. 소액주주가 아닌 주주"라며 "한미를 정상화하는 데에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주총 전까지 양측의 지분 확보는 초박빙이었다. 국민연금(지분 7.66%)의 지지를 받은 모녀 측은 42.99%,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의 지지를 받은 형제 측은 40.57%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가 형제의 편에 서게 된 것에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측면 때문이었다. 이날 주총 시작 전까지 소액주주 연대 플랫폼 '액트'에서는 주주 간 활발한 결집이 이뤄졌다. '액트' 운영사 컨두잇 이상목 대표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 주주명부 폐쇄 기준으로 1% 초반대 정도의 의결권이 액트에 모였고 (당시 주총에서) 행사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 주총 결과는 한미사이언스 주주들 입장에선 미래지향적인 결과"라며 "자발적으로 모인 주주들이 형제를 지지한 건 주주가치 제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주 입장에선 주주가치가 훼손되냐, 제고되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OCI그룹에 인수된다면 한미사이언스가 중간지주사로 전락하게 되고 이는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형제 측의 '한미사이언스를 지나치게 저렴하게 팔았다'는 주장이 우세했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이 보통 30~100%까지 인정되는데 제3자배정 유증으로 진행돼 오히려 저가에 판매되는 격이었다"고 봤다.


또 주주들과의 부족했던 소통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소액주주들에게 회사 매각(합병)은 중요 이슈이니 주주들에게 미리 이야기도 하고 회사 측이 '우리가 회사 방향성을 이렇게 나아가려고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결정한 일이다'는 설명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엔 생략됐다"며 "게다가 제약회사가 화학회사와 결합한다는 것이 주주가치 제고의 관점에선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날 진행된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모녀 측은 끝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오전 9시 이전 주총장에 도착한 형제들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회장, 부회장은 어디 갔냐"는 불만도 나왔다. OCI 통합 발표 당시에도 소액주주를 향한 기자회견이나 설명이 없었다는 점도 다시 부각됐다.

이 대표는 "소액주주들은 형제 측을 완벽하다고 보거나 존경해서 지지한 것이 아니다"며 "모녀 측이 부당한 의사결정을 했고 형제 측은 미래 전략에 대해 제시하는 경영자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주주가치 제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액주주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모녀 측의 소통 과정을 아쉬운 요소로 꼽았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여태까지 의결권 확보를 위해 움직인 셀트리온, 삼성물산 등 기업들을 보면 주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많았다"며 "이미 그런 과정에 익숙해진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한미약품그룹의 모녀 측의 노력이 조금 부족했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OCI와의 통합은 이종의 다른 기업에 (한미사이언스 기존 사업을) 넘기게 되는 것이었는데 정서적으로 많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며 "앞으로 기업이 발전해나갈 수 있다면 오너십은 바뀌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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