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표정 안에, 내게도 아늑한 집이 생겼다는 안도감 비슷한 게 다 느껴진다. 가족이 있단 건 그런 것./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컴컴했던 겨울밤. 2020년 1월, 새해였고 연휴였다. 가족들이 모처럼 모여 연결되는 날. 따뜻한 명절 음식을 나누고 정겹게 대화하는 날. 불빛이 별처럼 총총 켜져 있던 아파트 단지 안.
까만 고양이 용식이가 캣타워에서 내려가려 하고 있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까만 고양이가 그랬다. 영문도 모른 채 길바닥에 버려졌다. 별안간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차 아래에서 눈만 열심히 굴리며 덜덜 떨었다.
처음 보는 이 무릎에 폴짝, 거짓말처럼 뛰어올랐다
미래씨 남편 신형씨 무릎에 올라온 뒤, 그대로 집까지 올라왔던 날. 고양이에게 간택당한 집사여./사진=용식이 보호자님
그 때 까만 고양이를 두고 고민하던 사람을 보았다. 뭘 먹이려, 건어물을 들고 와 주려 해도 차 밑에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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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씨 부부도 거기로 다가갔다. 함께 쪼그려 앉아 차 아래를 바라봤다.
무릎에 올라오는 걸 좋아라하는 용식이./사진=용식이 보호자님
꿈쩍 않던 고양이가 슬금슬금, 신형씨 앞으로 다가왔다. 아, 됐다 하며 건어물을 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새끼 고양이가 폴짝, 뛰어 올랐다. 올라간 곳은 쪼그려 앉아 있던 신형씨의 무릎과 팔 위였다. "이리 와"하며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그리 안긴 거였다. 미래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건어물을 주려던 순간에 자연스레 올라와 버렸지요. 내려놓을 수 없어 그대로 들고 올라간 거예요."
15년 키우고 떠나보낸 '미돌이' 생각에 …두려웠었다
앞 다리가 부러져 수술 받은 용식이. 다리가 부러진 게 누군가에겐 버릴 이유가 됐고, 누군가에겐 살릴 이유가 됐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사람 손을 탄 것 같은 아이. 어쩌면 잃어버렸을 수도 있단 생각에, 일주일 동안 주인을 찾아주려 백방에 알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았다.
길에서 처음 집으로 데리고 온 날. 새끼 고양이였던 용식이는 카펫 위에 웅크리고 이리 잠을 쌔근쌔근 푹 잤다. 길 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긴장되었을지./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우리가 가족으로 품어줬으면 좋겠어."
코오오, 코오오옹, 참 곤히도 편하게 잔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그러니 작은 고양이를 보면서도 걱정이 됐다. 정이 들까 싶어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네 발 달린 녀석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 그걸 보며 예쁘기도 하고, 미돌이 생각도 나서 별수 없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단다.
종이 상자 안에 들어간 용식이./사진=용식이 보호자님
그리 가족으로 맞게 되었다. 이름도 '용식이'라고 지어주었다. 뭔가 촌스러운 한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당시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 주인공 이름이 용식이었다고(이름 후보엔 덕배, 용철이도 있었다).
다리 부러져, 버려진 용식이…수술 후 다 나았다
용식아, 무슨 생각하니./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앞 발을 엑스자로 만든 용식이. 와칸다 포에버(영화 블랙팬서 참조), 그런 느낌이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마음이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만약 사람이 데리고 있다가, 그 이유로 버린 거라면 정말 나쁜 사람이잖아요. 다신 반려동물을 그가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지요."
눈이 어쩜 이리 동그란지. 귀여워서 많이 올리는 것 이해해주십시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즐겁게 테이블에서 노는 용식이./사진=용식이 보호자님
다리 수술을 한 용식이. 후유증이 남지 않아서 다행이야./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용식이 다리는 수술 후 완쾌해 튼튼해졌다. 지금은 온 집안을 열심히 뛰고 누비고 할 정도로.
처음 마음을 주었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반려견 미돌이./사진=미돌이의 영원한 보호자님
용식이가 오기 전까지, 미래씨는 한 번도 떠나보낸 강아지 이름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었다.
"말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거나 눈물부터 나서 그랬지요. 무려 3년이나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 용식이가 오고 나서 강아지 이름도 자연스레 꺼내게 되었다. 볼 순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가슴에, 곁에, 여전히 사랑스럽게 머물러 있는 강아지 '미돌이'.
바닥에서 부비부비하는 용식이. /사진=용식이 보호자님
용식이와 함께한 날이 벌써 5년. 지금도 떠날 때를 생각한다고 했다. 미래씨가 말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저는 다시 무척 아프고 힘들 거예요. 지난번보다 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대책이 없지요.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밖에요."
'이 부드러움을, 따뜻함을, 또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 가끔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 먼저 다가와서, 얼굴을 만져주면 한 쪽 다리로 내 팔을 껴안듯 걸쳐 마음껏 그 안정감을 누리는 다정한 고양이. 이런 다정함이 또 있을까. 서로에게 오랫동안 기쁨이 되자.' 용식이 보호자님이 쓴 글./사진=용식이 보호자님
눈 오는 날, 점퍼에 쏙 들어간 용식이. 까만 얼굴에 흰 눈이라니 사랑스럽다./사진=용식이 보호자님
함께라면 더없이 좋은 세 가족. 용식이는 아무래도 좋을 거다. 이들과 함께라면./사진=용식이 보호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