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세계 최초로 빛이 나는 난초의 메시지

머니투데이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4.03.15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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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겨울의 끝자락인 지난 2월7일부터 14일까지 됴쿄돔 구장 내 시티프리즘홀에서 일본 최대규모의 '세계 난초 전시회 2024-꽃과 초록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로 34회를 맞이한 이 난초전에는 규슈 남부에서 오키나와까지 뻗어 있는 난세이제도의 풍요로운 자연에서 서식하는 희귀 난초들이 소개됐다. 특히 환경성 적색목록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일본 고유종 야생난초인 오키나와 플로버를 중심으로 이리오모테란, 바이케이란 등 난세이제도 원산의 난초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로 중단된 지 4년 만에 해외 출품자들이 세계 난초 전시회의 중심인 전시부스로 돌아왔다. 페루, 에콰도르, 대만 등 총 7개 국가와 지역의 생산자들이 시티프리즘홀에 모여 현지에서 재배한 희귀 난초를 전시, 판매했다.



한국도 '난초' 애호가가 많을 텐데 아쉽게도 참가하지는 않았다.

10만송이의 형형색색 난초가 아치형태로 이어진 호화로운 입구와 4m가 넘는 난초벽들이 마치 하늘로 솟아오른 것처럼 우뚝 솟은 모습의 하늘정원이 설치되는 등 그야말로 세계적 규모 난초들의 대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간의 이목을 끈 난초는 '대상'을 수상한 가나가와현에서 출품한 '타카코'라는 작품이었지만 이 대상보다 더욱 뜨거운 관심을 끌며 수십 미터의 관람 대기줄을 세운 인기작은 따로 있었다. 이 작품은 출품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 난초동호회 소속이 아닌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출품한 것이었다.

'푸른 나비난초'로 명명한 이 난초의 특징은 검은빛(자외선)을 비추면 황록색 형광을 방출하는 세계 최초로 개발된 발광기능을 내포한 특수란이다.

국립대인 치바대학의 식물세포공학과 명예교수인 미토 마사히로(水藤正弘)와 첸 동보(Chen Dongbo) 연구원이 유전자 변형기술을 이용해 나비난초를 만들었는데 개발과정을 보면 신비롭기만 하다.


일본 심해에 서식하는 해양플랑크톤의 일종인 키리디우스 포페이(Cyridius poppei)는 발광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 동물성 플랑크톤과 식물인 난초의 유전자 조작과 통합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발광하는 난초가 탄생한 것이다.

이 동물성 플랑크톤은 청색광에 노출되면 황록색으로 빛나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통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지도 않지만 연구단은 해양플랑크톤에서 추출한 황록색 형광을 방출하는 형광유전자를 개량해 유전자를 운반하는 '벡터'(유전자를 다른 생물에게 이식할 때 그 유전자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에 실었다.

이후 이 벡터가 난초 식물세포로 보내진 후 식물 염색체에 들어가 그 세포에 통합되며 빛이 나는 '푸른 나비난초'로 형질전환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개발에는 총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투입됐으나 모든 유전자가 발광형태로 전환되는 게 아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도 3개 표본 중 하나만 꽃까지 빛나는 세포로 형질전환됐고 나머지는 '잎'까지만 전이됐다.

국립대 교수진이 단지 난초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이 어려운 개발을 진행해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 장기 프로젝트를 감행해 성공한 올해 희수(77세)를 맞이한 미토 교수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 개발을 통해 유전자 조작기술의 효과와 잠재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자연계가 만들어낸 생물의 종류도 많고 중요하다고 인식되지 않는 것도 많고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멸종되는 것도 많다. 모든 생물에게 어떤 유용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이 기술을 이용해 빛이 없어도 주위의 식물들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미래의 징조이며 실로 희망의 빛이라고 생각했다. 이 빛나는 난초가 희망의 등불로, 이런 종류의 기술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이 시대 진정한 과학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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