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EU는 왜 플랫폼 규제를 강화할까

머니투데이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2024.03.1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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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작년 말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경쟁 촉진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안은 EU의 '디지털 시장법'(DMA)과 유사하게 매출과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을 기준으로 '지배적 지위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여 규제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하고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 제정 추진 발표 이후, 벤처 투자자, 학계, 스타트업들이 법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만약 법이 통과되면 스타트업들의 성장 및 인수합병 기회를 모두 막힐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EU는 플랫폼 규제를 강화할까?

EU에서 플랫폼 규제를 총괄하고 추진하는 이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내부시장 집행위원인 티에리 브르통이다. 그는 1980년대 초 회사를 창업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 위기에 빠진 프랑스 기술기업들의 경영진으로 활약하며 기업회생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한때 대우에 매각될 위기에 처했던 프랑스 국영 가전제품 회사인 톰슨 멀티미디어의 회장을 맡아 가전제품에 인터넷 기술을 접목하여 회사의 사업을 다각화하고 투자를 유치하여 매출을 증대시켰다. 이후 부채의 늪에 빠져 있던 프랑스 텔레콤의 대표로 임명되어, 비용을 절감하고 증자를 실시했다. 기업회생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던 브르통은 프랑스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EU에서 중책을 맡게 됐다.



브르통 위원이 EU에서 추진하는 일 역시 그의 전문 영역인 기업회생과 유사하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시장 지배를 허용했던 EU가 디지털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단일 시장(DSM)을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이 제시되었다. DSM은 EU가 디지털 시장에서 독자적인 규칙과 자주성을 확보하여 유럽에서 글로벌 디지털 기술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브르통 위원은 DSA, DMA, AI법, 데이터법, DNA 등의 5종의 법률을 주도하고 있다. 이 중, DNA를 제외한 4개 법은 이미 통과되어 실행이 시작되어 구글, 메타, 애플,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해 공정성 및 이용자 보호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DSA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게 맞춤형 온라인 광고 규제, 허위 정보 및 혐오 표현 검열 의무 등을 부과하고, DMA는 대형 플랫폼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하여 이들에게 비즈니스 이용자에 대한 차별 금지 및 동등한 접근 기회 제공, 데이터 및 알고리즘 접근 보장 등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인공지능법은 고위험 인공지능 시스템의 기술 문서 작성 및 공개, 로그 기록의 보관 의무 등을 담고 있고, 데이터법은 제3자에게 데이터 제공 권리 및 의무, 데이터 처리 사업자 변경 지원 의무를 담고 있다.



브르통 위원은 기고문과 인터뷰를 통해 유럽의 플랫폼, AI, 데이터, 클라우드, 양자, 메타버스 등의 분야에서 혁신과 기술적 리더십을 육성하기 위해 이런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럽의 기술 혁명이 성공하려면 네트워크의 전송 속도, 저장 용량, 컴퓨팅 성능 및 상호 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데이터는 유럽 지역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이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출현하여 경제 성장, 혁신, 일자리 창출을 이루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결국 DSM의 전략은 EU 전체 데이터 및 통신 시장의 경제적 규모를 갖춘 범유럽 인프라 운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 플랫폼들의 데이터 및 통신 활동을 EU 내에서 규제하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DMA 방식의 규제 도입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토종 플랫폼과 스타트업들에 대한 규제로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은 국내 혁신 생태계를 면밀히 분석하여 현실에 맞는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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