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하고 배당 확대…기업 밸류업 대세 따르기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4.02.1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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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울=뉴스1)


주요 대기업이 자사주 소각과 배당확대에 나선다.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주요국 비슷한 기업보다 한국 기업이 저평가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도 맞물린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주주가치 강화를 위해 가장 강도높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 정책을 내놓은 기업은 삼성물산이다. 최근 보통주 780만7563주와 우선주 15만9835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보통주와 우선주 합해 시가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의 자사주를 태운다.



올해 배당정책도 내놨다.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지급하는 배당정책 내에서 최대 지급률을 적용한 보통주 주당 2550원, 우선주 주당 2600원을 배당한다.

이 같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은 올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번 1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은 삼성물산이 지난해 2월 내놓은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에 따른 결정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보유 자사주 전량을 향후 5년에 걸쳐 모두 소각하기로 했다.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재원으로 하는 배당 정책도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올 들어 자사주 소각 일정을 5년에서 3년으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약 8000억원 규모의 주식소각을 결정했다. 현금 및 현물 배당을 대신해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 자사주를 이사회 결의에 따라 전량 태운다. 총 491만9974주로, 장부가 기준 7936억원 규모다. 기존 발표한 배당성향 30%를 상회하는 주주환원정책이다. SK이노베이션이 자사주를 활용한 주주 환원 정책에 나선 것은 6년 만이다.

기아는 올해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한 뒤 50%를 소각하고, 3분기 누계 기준 재무 목표를 달성하면 4분기 50%를 추가로 태우기로 했다.


SK가스는 전년 배당금 6500원 대비 23% 상향된 8000원을 주당 배당금으로 주기로 했다. 이미 지급된 중간배당 2000원과 기말배당 6000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배당 총액은 718억 원이다. 배당금은 2020년 4000원에서 3년 만에 2배 확대됐다.

LS마린솔루션은 주당 160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역대 최대 규모이며 총 배당금은 4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재계 움직임은 정부가 최근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궤를 같이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 확립 △국내외 투자자들의 자본시장 접근성 제고 △주주가치 존중 문화 확산이 핵심 내용이다. 국내 기업이 수익성, 자산가치가 비슷한 외국 기업에 비해 저평가 되는 경향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국내 증시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05배로 선진국의 3.10배는 물론 신흥국의 1.61배보다도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주주가치 제고 정책은 단기적 증시 부양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게 증권가 전망이다. 특히 시장 관심은 자사주 소각에 쏠린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발행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을 높이는 효과를 내는 만큼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 더 강력한 주주 환원 정책으로 통한다.

게다가 대다수 국가가 배당에는 세금을 높게 책정하는 반면, 주가 상승 차익에 대해선 세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매긴다. 주주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전방위적 자사주 소각이 중장기적으로 기업 체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사주 소각은 미래 투자가 아니라 돈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을 자사주 소각에 쓴 만큼 연구개발이나 설비 투자에 활용할 재원은 줄어든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해 질 수 있는 부담도 생긴다. 자사주 자체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백기사에 매각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에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만큼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사라지는 효과가 나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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