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탈출 못해" 유독가스에 '켁켁'…37명 사망, 생지옥 된 병원[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4.01.26 07:40
글자크기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경찰, 국과수,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자들이 2018년 1월 27일 오후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경찰, 국과수,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자들이 2018년 1월 27일 오후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불은 이날 오전 7시30분쯤 병원 본관 1층 응급실에서 시작됐다. 발화 장소는 탕비실로도 쓰던 탈의실 천장으로 추정됐다.

당시 간호사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며 밖으로 나왔다"고 전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과장은 "전기적 요인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전기 합선 등으로 불이 났을 거라 추정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생명을 지키려 찾은 병원은 불이 번지면서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3분 만에 소방 출동에도…유독가스, 거동 불편한 고령·중환자 덮쳤다
소방 인력은 최초 화재 신고 3분 만인 오전 7시35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오전 9시20분쯤 큰 불길을 잡았고, 오전 10시26분 화재를 진압했다.



빠른 출동 덕에 화염이 2층 위로 더 번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병원 중앙 계단을 통해 건물 안으로 급격히 퍼진 메케한 연기와 유독가스는 막지 못했고, 입원 환자 34명과 이들을 돌보던 당직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진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방 당국의 빠른 대응에도 화재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던 건 고령에 거동이 불편했던 중증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숨진 37명 중 30명이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응급실과 원무실이 있는 병원 1층과 독감 환자나 골절 등 정형외과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실이 있는 2~3층에서 나왔다.


숨진 환자 대부분은 거동이 어려워 침상에 의지해온 장기 요양 환자였다. 대피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자마자 숨지는 환자가 속출했고, 병원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떼는 바람에 숨진 환자도 있었다.

화상으로 숨진 이는 없었다. 사망자 37명 중 33명에게서는 목 그을음이 발견돼 연기 및 유독가스에 질식사로 확인됐다. 사인이 확인되지 않은 4명은 모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들이 화재로 인한 정전으로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질식사했을 거라는 추측이 나왔다.

"중환자 대부분 침대에 결박돼있어…구조 활동 지체"
화재 당시 일부 사망 환자는 침대에 결박된 상태라 구조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당시 밀양소방서 구조대장은 "3층 중환자실에 올라갔을 때 20여 명 중 3~4명을 제외한 18명 정도가 결박돼 있었다"며 "한쪽 손이 침대 사이드 레일에 로프나 태권도복 허리띠 같은 걸로 묶여 있었는데 결박을 푼다고 (구조 활동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긴박한 상황 속 결박을 푸는 데에만 30초~1분 정도 걸렸고, 결국 3층에 있던 21명 환자 중 9명이 사망했다.

대피를 도울 인력도 부족했다. 생존 환자 등에 따르면 화재 발생 후 비상벨이 10분 동안 울리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대피하라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화재 당시 83명이 입원해있던 병원에는 의사 1명과 간호조무사 등 9명이 근무 중이었다. 의료진 1명당 거동이 불편한 환자 10명을 대피시켜야 했던 셈이다.

스프링클러 의무 아니었던 병원…이후 법 개정
경찰, 국과수,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자들이 2018년 1월 27일 오후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경찰, 국과수,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자들이 2018년 1월 27일 오후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세종병원 건물은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공법'을 사용한 건물이라 피해가 컸다.

드라이비트 공법은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바르는 방식으로, 저렴한 비용에 단열 성능도 뛰어나지만 화재 발생 시 치명적이다. 외벽의 스티로폼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지고, 스티로폼이 타면서 유독물질을 발생시킨다.

또한 화재 초기 대응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약 200명 수용이 가능한 세종병원은 병원 면적이나 층수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규정에 미치지 않아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의료시설이 아니었다.

당시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의료시설은 바닥 면적 합계 600㎡ (181평) 이상인 정신의료기관·요양병원, 층수가 11층 이상인 의료기관 또는 4층 이상으로 바닥 면적이 1000㎡ (302.5평) 이상인 의료기관'이었다.

6층 높이에 바닥 면적이 394.78㎡(119평)인 세종병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요양병원도 아니고 대형병원도 아닌 세종병원과 같은 규모의 일반 병원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자 2019년 소방시설법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하도록 개정됐다. 바닥 면적 합계가 600㎡ 이상인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은 스프링클러 설비, 600㎡ 미만이면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법 개정 이전에 지은 병원은 2026년까지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도록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