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김영광-'재계약' 정성룡 엇갈린 행보... 되돌아본 한국축구 GK 계보

스타뉴스 박정욱 기자 2024.01.0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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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김영광.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광(가운데 연두색 유니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김영광(가운데 연두색 유니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골키퍼(GK)는 여러 스포츠 구기 종목에서 상대 득점을 막기 위해 골문을 지키는 선수다. 그래서 '문지기', '수문장'이라고 한다.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베테랑 골키퍼 두 선수의 엇갈린 소식이 최근 팬들에게 동시에 전해져 눈길을 끌었다.

김영광(41)과 정성룡(39)이다.



김영광은 불혹(40세)의 나이에 2023년 K리그 최고령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다 새해 들어 은퇴 소식을 알렸다. K리그2 성남FC는 지난 3일 "2020시즌부터 구단과 함께한 '글로리' 김영광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난다. 성남의 든든한 수문장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김영광, 매 경기 보여준 뜨거운 열정과 팬들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영광은 은퇴와 선수 생활 연장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사흘 뒤인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글을 남긴다. 저는 이제 장갑을 벗기로 마음먹고 제2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등번호 41번과 같은 나이가 되는 새해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는 "축구를 시작해서 하루하루 후회없이, 안 되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며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찾아 주시는 팀들이 있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찾아주는 곳이 있을 때 떠나는 게 나중에 안 좋은 모습으로 떠나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이 들어 수백 번 수천 번 고민 끝에 장갑을 벗기로 했다. 지인분들 팬분들께서는 더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이 (장갑을) 벗을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김영광은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울산현대(현 울산HD), 경남FC, 서울이랜드, 성남FC를 거치며 2023년까지 K리그에서 22시즌 동안 통산 605경기(749실점)에 출전했다. '레전드' 김병지(54·강원FC 대표이사)의 706경기에 이은 K리그 역대 최다 출전 2위 기록이다. 2023시즌에도 17경기에 출전해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줬으나, 성남과 계약 만료 뒤 은퇴를 결심했다. 그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2004~2012년 A매치 17경기(15실점)를 뛰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을 이끌며 23세 이하 대표팀에서도 31경기(19실점)에 나서는 등 연령별 대표로도 61경기(41실점)에 출전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 골키퍼 정성룡.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SNS 캡처가와사키 프론탈레 골키퍼 정성룡.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SNS 캡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만난 울산 골키퍼 조현우(왼쪽)와 가와사키 골키퍼 정성룡.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만난 울산 골키퍼 조현우(왼쪽)와 가와사키 골키퍼 정성룡.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정성룡은 일본프로축구 J1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재계약해 동행을 이어간다. 가와사키 구단은 지난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정성룡과 2024시즌에도 동행한다"고 계약 연장 소식을 전했다.


정성룡은 김영광보다 한 해 늦은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무대에 입문해 성남 일화(현 성남FC), 수원 삼성을 거쳐 2016년부터 가와사키에서 뛰고 있다. K리그에서는 통산 296경기(310실점)에 출전했다. 포항에서 2007년 K리그1, 성남에서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각각 맛봤다. 가와사키에서도 J1리그 4회(2017, 2018, 2020, 2021년), 일왕배 2회(2020, 2023년)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 가시와 레이솔과 일왕배 결승전에서는 연장까지 120분간 무실점으로 지켜낸 뒤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넣고 상대 골키퍼의 킥을 막아내며 우승을 책임졌다.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서는 등 2008~2016년 A매치 67경기(67실점)에 출전했고,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09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선발돼 경쟁하던 시절의 김영광(왼쪽)과 정성룡. /사진=뉴시스2009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선발돼 경쟁하던 시절의 김영광(왼쪽)과 정성룡. /사진=뉴시스
김영광과 정성룡은 1년 차로 '체절가'의 형제 구단인 전남과 포항에 입단해 나란히 프로 초창기부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골키퍼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김영광과 정성룡은 한국 축구의 골키퍼 계보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한국 축구의 골키퍼 계보
한국 축구의 역사에서 골키퍼를 이야기할 때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1세대' 선수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홍덕영(1948~1954년 A매치 17경기 56실점)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의 '원조'와도 같다.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 터키(튀르키예)에 0-7로 연거푸 대패하며 2경기에서 무려 16실점을 했지만, 수많은 슈퍼세이브로 찬사를 들었다. 2005년 제정된 '대한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의 첫 헌액자이다.

함흥철(1956~1964년 A매치 51경기 66실점)은 1956, 1960년 제1, 2회 아시안컵에서 연속 우승할 때 주역이었다. 한국 축구는 그 이후 아시안컵에서 단 한 차례도 다시 정상에 서지 못했고, 오는 12일 개막하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에 재도전한다.

축구 원로 이세연. /사진=대한축구협회축구 원로 이세연.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세연(1966~1973년 81경기 55실점)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72년 아시안컵 준우승 등에 힘을 보탰다. 그는 '4강 신화'를 일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역대 최고의 골키퍼'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세연과 라이벌 관계를 이룬 변호영(1971~1977년 34경기 19실점)에 이어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김황호(1976~1981년 45경기 26실점),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조병득(1979~1989년 43경기 29실점) 등이 1980년대 중반까지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다.

이후 한국 축구는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사상 두 번째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면서 월드컵을 중심으로 골키퍼 계보를 이어간다. 1986년 멕시코 대회의 주전 골키퍼 오연교(1985~1986년 10경기 10실점), 1990년 이탈리아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골문을 지킨 최인영(1983~1994년 51경기 40실점),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한 장신(191cm) 골키퍼 김풍주(1983~1991년 22경기)가 있었고,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김병지(1995~2008년 61경기 72실점)가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

이운재. /사진=대한축구협회이운재. /사진=대한축구협회
김병지. /사진=대한축구협회김병지. /사진=대한축구협회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이운재(1994~2010년 133경기 115실점)가 김병지와 경쟁을 이겨내고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그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최인영의 백업 골키퍼로 참가해 독일과 조별리그에 한 차례 나서며 큰 경험을 한 뒤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도가입했다. 역대 최장신(196cm)인 '골 넣는 골키퍼' 서동명(1995~1998년 22경기 16실점)도 한국 축구에 힘을 더했다.

김병지와 이운재의 뒤를 이어 부상한 골키퍼는 김용대(2000~2008년 21경기 11실점)와 김영광, 정성룡이다. 김용대와 김영광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이운재의 백업 골키퍼로 출전했으나, 선배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그 사이를 헤집고 정성룡이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성장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운재와 김영광을 벤치로 밀어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부진할 때 김승규(2013년~ 80경기 59실점)가 벨기에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골키퍼 장갑을 끼며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는 김진현(2012~2018년 16경기 19실점)과 경쟁 구도를 뚫고 나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고, 지금도 주전 수문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신태용 감독의 신임을 받은 조현우(2017년~ 24경기 25실점)가 K리그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급부상해 주전 골키퍼로 나서 김승규, 김진현과 경쟁을 이겨냈다. 그는 스웨덴(0-1 패), 멕시코(1-2 패)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선방쇼를 펼친 데 이어 독일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0으로 승리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나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23년 새로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경쟁 구도는 빌드업 능력에서 앞서는 김승규가 우위를 점한 가운데 조현우와 송범근(1경기 무실점)이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다. 이 세 골키퍼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새해 카타르 아시안컵에도 출전해 64년 만의 우승 도전에 힘을 더한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김승규. /사진=뉴시스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김승규.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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