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속도전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2024.01.0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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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 강남과 지방 가리지 않고 거래가 뚝 끊겼다. 신규 공급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건설업계에서는 앞으로 3~4년 후에는 다시 공급 절벽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신청 이후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불안이 더해지면서 이런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건설사에서 인·허가를 받았으나 아직 착공하지 않은 '착공 대기 물량'을 33만가구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착공 대기 물량은 2020년 23만8000가구에서 2021년 19만1000가구, 2022년 25만4000가구로 늘어난 뒤 지난해 30만가구마저 넘겼다. 인허가 물량 중 10건 6~7건(63%)은 미착공 상태다.



일반적으로 주택은 인허가 3~5년, 착공 2~3년 뒤 공급이 이뤄지기에 주택 인허가·착공은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그런데 건설사들은 지난해부터 착공을 최대한 늦추고 있다. 인허가 이후 착공까지 소요 기간은 종전 7~9개월에서 12개월 정도로 길어졌다. 착공해야 하는데 건설경기 악화 탓에 본 PF로 전환 못 하는 사업장이 늘어난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군도 (금융 조달 비용이 커져서) 사업을 진행할수록 비용 부담을 느끼는데, 다른 곳들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사정을 알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이후 부랴부랴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막힌 자금줄'을 뚫어 정체된 주택공급의 정상화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를 통해 부동산 PF 보증의 공적 보증 한도를 대폭 확대했다. 중도금대출 보증 책임 비율은 기존 90%에서 100%로 늘렸다. 사실상 금융권에서는 위험부담이 없도록 했다. 정부의 긴급 수혈로 월 착공 건수는 10개월 만에 소폭 증가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해 1만가구까지 떨어졌던 월 착공 건수는 10월에는 1만6000건, 11월에는 2만9000건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태영건설이 살아나던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촉발된 부동산 PF 발(發) '줄도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태영건설에 이어 부채율이 높은 건설사들이 다음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해 부도 처리된 건설사는 총 13곳에 달한다. 대부분 지방 건설사들로 부동산 PF로 인해 유동성 문제에 시달려왔다는 점에서 태영건설과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직전에도 창원 지역 중견 건설사인 남명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이 건설사의 공사 미수금 누적액은 총 600억원이었다.

정부는 조만간 부동산 PF 관련 추가 지원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달 1일부터 '건설산업 신속 대응반'(TF)을 가동했다. 사업성에 따라 추가 보증을 제공하는 '옥석 가리기'(구조조정) 방식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미분양 우려가 많은 사업장은 정부가 임대주택 사업장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추진한다. 대형사들의 연쇄 부실이 현실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한다. 더 번지면 손 쓸 방도가 없다. 속도전이다.
이민하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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