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보고 따라해" 자해로 응급실 오는 1020 '쑥'…"야단·충고는 독"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11.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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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SNS 보고 따라해" 자해로 응급실 오는 1020 '쑥'…"야단·충고는 독"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자해(自害)가 왕따, 학교 폭력만큼 청소년들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지난 8일 발표한 '2022 손상유형 및 원인 통계'에 따르면 의도적 손상(자해·자살·폭력·타살 등) 환자 가운데 자해·자살 환자의 비율은 2012년 2.2%에서 2022년 5.1%로 2.3배가량 증가했고, 그중에서도 10~20대의 비율이 2012년 30.8%에서 2022년 46.2%로 무려 15.4%P나 폭증했다. 이 수치는 23개 병원의 응급실에 내원한 손상 환자(19만3384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이 자해·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2012년에는 가족·친구와의 갈등이 27.9%로 가장 많았으나, 2022년에는 정신과적 문제가 44.1%를 차지했다. 10~20대의 정신건강 관리에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자해는 청소년기에 많이 나타나지만, 성인이 된 이후 처음 시도하는 경우도 적잖다. 해외 보고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4~20%가 평생 한 번 이상 자해를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 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3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분석한 결과, 10~20대 자해·자살 시도자의 비율은 2012년 30.8%에서 지난해 46.2%로 15.2%p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서울=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 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3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분석한 결과, 10~20대 자해·자살 시도자의 비율은 2012년 30.8%에서 지난해 46.2%로 15.2%p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자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행위인 '자살'과 달리 '죽으려는 건 아니지만 고의로 자기 몸을 해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자해하는 사람이 꼭 자살하는 건 아니지만 자해와 자살 시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자해 이후 자살하는 식으로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서 자해 시도자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는 "자해는 억눌린 스트레스와 고통의 표출 방식이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일 수 있다"며 "자해 시도자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상담과 개입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몸에 심각한 통증을 일부러 일으키는 자해는 왜 하는 걸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면 살아있음을 느껴서", "스스로 벌주기 위해", "몸이 아픈 게 마음이 아픈 것보다 나아서", "내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등 자해 원인은 각양각색이다. 이런 목적으로 실행하는 자해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선 '비자살성 자해 행위'로 규정한다.

비자살성 자해를 진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지난 1년간 5일 이상 자기 신체에 대해 고의로 손상(자기 몸에 출혈·상처를 유발했거나 불로 지지기, 과도하게 문지르기 등)을 가한 경우다. 이런 자해는 경도 또는 중등도의 신체적 손상을 가하려는 의도가 목적으로, 자살 의도는 없다.

둘째, 다음 중 하나 이상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자해를 시도한 경우다. △부정적인 느낌·인지 상태로부터 안도감을 얻기 위해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긍정적인 기분 상태를 이끌기 위해서다.


셋째, 다음 중 최소한 한 가지와 연관된 고의적인 자해 행동을 시도한 경우다. 우울, 불안, 긴장, 분노, 일반화한 고통, 자기 비하, 대인관계의 어려움, 부정적인 느낌·생각 등이 자해 행위 직전에 나타났어야 한다. 이런 감정에 몰두하는 기간이 있고,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 자해 생각을 반복할 수 있다.

"SNS 보고 따라해" 자해로 응급실 오는 1020 '쑥'…"야단·충고는 독"
SNS 자해 영상, 청소년 모방 부른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SNS를 통해 자해 후기, 정보를 공유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해가 많이 늘어났을 것으로 분석한다. 안용민 교수는 "젊은 층은 감정을 소통·공감하는 수단으로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며 "그 일환으로 자해와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타인과의 소통법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실제로 SNS 등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자칫 '자해가 현실을 돌파할 수단'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자해를 쉽게 여겨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지난 5월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이태엽,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팀은 2018년 3월 청소년 대상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다룬 콘텐츠가 방영된 후 청소년 사이에서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팀은 국가응급환자 진료정보망을 이용해 2015년 1월~2018년 12월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가운데 자해(자살 시도 및 비자살적 자해)로 인한 환자 11만5647명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시점은 2018년 3월 말경으로, 당시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이 소개돼 청소년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자료=서울아산병원/자료=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월평균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를 분석한 결과, 자해 콘텐츠가 방영되기 전(2018년 2~3월)과 방영된 후(2018년 4~12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10~14세의 경우 월별 인구 10만 명당 0.9명에서 3.1명으로 늘었으며, 15~19세는 5.7명에서 10.8명, 20~24세는 7.3명에서 11.0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15~19세 여성과 20~24세 남성에서 증가세가 유독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연도별로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연간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는 10~14세의 경우 2015년 인구 10만 명당 8.1명에서 2018년 31.1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는 63.5명에서 119명으로, 20~24세는 75.7명에서 127.1명으로 늘었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됐던 2018년에 들어 자해 시도가 확연히 증가한 것이다.

여성 청소년의 자해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자해로 인해 응급실을 방문한 10~14세 청소년 가운데 여성은 2015년 46.6%를 차지했던 데 비해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2018년에는 76.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에서는 여성 비율이 55.8%에서 67.8%로, 20~24세는 55.7%에서 61.9%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자해 방법으로는 신체 긋기로 인한 자해가 현저히 늘었으며, 약물로 인한 자해도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자해는 해도 되는 것' 또는 '자해는 멋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자해를 청소년들에게 알린 효과가 있다"며 "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SNS 보고 따라해" 자해로 응급실 오는 1020 '쑥'…"야단·충고는 독"
자해는 외부에 알리는 도움 요청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안용민 교수는 "자해는 정서적 고통을 어찌할 줄 몰라 보내는 구조신호이자 마음에 큰 아픔이 있다는 신호"라며 "주변에 자해 시도자가 있다면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자해 시도자를 섣부르게 충고하려 하거나 야단·통제하는 건 독이 될 수 있다. 부정적인 언행도 삼가야 한다.

자해를 한 번 시도해본 사람은 더 큰 자극을 충족하기 위해 행위의 강도를 높이려는 경향을 보인다. 약물·도박에 중독되는 원리와 닮았다. 만약 자해를 반복하면 우울증, 양극성 장애 등 정신질환을 동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치료를 통해 우울, 불안, 초조, 감정 기복 등 증상이 조절되면 스스로 힘든 감정을 인내해 자해도 줄어들 수 있다. 안 교수는 "자해와 자살 충동이 동반되거나 자해, 자살 시도가 구별되지 않은 경우,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해한 경우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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