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안돼요" 카드값 미뤘다가…마통 2배 금리 '화들짝'

머니투데이 황예림 기자, 김세관 기자 2023.11.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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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리볼빙의 배신(上)

편집자주 신용점수 900점이 넘는 고신용자가 15%가 넘는 고금리로 빚을 갚고 있다. 카드사 리볼빙 얘기다. 리볼링을 잘못 이용했다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위험도 있다. 은행 신용대출도 5%면 빌릴 수 있는 이들은 왜 고금리 리볼빙을 쓰는지, 카드사의 잘못된 유혹은 없었는지 리볼빙을 재조명하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단독]리볼빙 이용 10명 중 2명, 고신용자…마통 2배 금리로 이용
①고신용자 리볼빙 평균 12.34~15.98%, 은행 마이너스통장 5.69~5.84%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카드사의 리볼빙 이용자 10명 중 1~2명은 신용점수 900점 이상 고신용자로 나타났다. 카드론·현금서비스를 받는 고신용자가 100명 중 1~2명에 불과한 것과 대조된다. 카드사의 권유로 고신용자가 리볼빙에 유입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행에서 5% 안팎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고신용자가 평균 12%가 넘는 리볼빙을 사용하고 있어서다.



2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내 카드사의 리볼빙 잔액 중 15~16%는 신용점수 900점 이상 고신용자가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9월말 리볼빙 잔액 7조6126억원을 고려하면 고신용자가 이용하는 리볼빙 잔액만 1조원이 넘는 셈이다. 같은 시점 카드론·현금서비스 잔액 중 900점 이상 고신용자가 대출받은 금액은 1~2%에 불과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를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을 수 있게 한 서비스다. 카드 대금이 부족한 고객이 연체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상환 부담이 큰 대출성 상품이다. 카드론보다 금리가 높은 데다 여러 달 연속으로 이용하면 갚아야 할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볼빙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신용점수에도 악영향이 미친다. 리볼빙이 저신용자의 전유물로 여겨진 이유다.



900점 이상 고신용자는 은행 대출 대비 2~3배 높은 금리로 리볼빙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달말 카드사가 900점 이상 고신용자에게 적용한 리볼빙 금리는 평균 12.34~15.98%에 이른다. 반면 지난달말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900점 이상 개인 고객이 일반신용대출을 받을 때 5.55~5.98%의 금리를 적용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 금리도 5.69~5.84%였다.

1금융권인 은행에서 저렴한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고신용자가 리볼빙으로 유입되는 기현상에 카드사가 리볼빙이 필요치 않은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대부분의 카드사는 최근까지 리볼빙을 '일부 결제', '최소 결제' 등으로 표기해 비판을 받았다. 일부 카드사는 고객이 카드를 발급할 때 리볼빙이 이자가 붙을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리볼빙을 신청해보라'며 약관 동의를 권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카드사와 금융당국엔 "자신도 모르는 새 리볼빙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민원이 간간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고신용자의 유입이 자연적으로 늘어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리볼빙과 현금서비스는 카드론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DSR 규제 한도까지 은행 대출을 받은 고신용자가 현금이 부족해 리볼빙을 일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올해 카드사가 건전성 관리를 위해 중·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을 높인 것도 고신용자의 비중이 올라가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900점 이상 고신용자의 비중이 카드론·현금서비스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다"라며 "다만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의 지시로 리볼빙 설명 의무를 강화했기 때문에 고신용자 중 상당수는 필요에 의해 유입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값 연체 없이 미뤄요" 무심코 동의한 리볼빙…18% 이자폭탄
②카드 발급때도 리볼빙 마케팅

/사진=조수아 디자인기자/사진=조수아 디자인기자
카드사가 모바일 앱에서 리볼빙을 표기할 때 '미납 걱정 없이 결제' 등 고객이 혼동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를 발급할 때 리볼빙을 권유하는 팝업을 띄우거나 관련 전화를 돌리는 카드사도 있다.

26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카드사는 최근까지 모바일 앱에서 정식 표기가 아닌 단어를 활용해 리볼빙을 판매했다. 리볼빙의 정식 명칭은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이다. 그러나 롯데카드는 '미납 걱정 없이 결제'를 누르면 리볼빙 안내가 나오도록 모바일 앱 화면을 구성했다. 신한·우리카드는 '최소 결제', KB국민·현대카드는 '일부 결제'를 누르면 리볼빙 신청으로 화면이 넘어갔다. 이 외 카드사도 '최소 결제'와 '일부 결제'라는 단어로 리볼빙을 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금융당국의 지적을 받고 이달 정식 명칭으로 표기를 변경했다.

일부 카드사는 고객이 카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리볼빙 약관 동의를 유도하는 팝업을 띄우고 있다. 한 카드사는 고객이 리볼빙 신청에 동의하지 않으면 '연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을 등록해 결제 비율에 따라 자금 관리를 운영해보세요. 리볼빙 신청에 동의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화면에 표시했다. 리볼빙 약관에 동의하라고 권유하는 전화도 여전히 대부분의 카드사에서 돌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리볼빙은 약관에 동의해야 이용할 권한이 생긴다.

카드사가 리볼빙을 다른 명칭으로 표기하고 약관 동의를 유도하는 이유는 리볼빙이 고수익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난달말 기준 국내 전업 카드사의 리볼빙 평균 금리는 16.06~17.88%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카드사 입장에선 리볼빙 이용자가 늘면 더 많은 수수료수익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지난해에는 카드사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리볼빙 마케팅을 벌이면서 리볼빙 잔액이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8월 이후 카드사의 지나친 리볼빙 마케팅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지난해엔 리볼빙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카드사가 금리 할인 혜택이나 커피 쿠폰을 제공했지만 현재는 금융당국의 제지로 이런 형태의 광고를 찾아볼 수 없다.

또 카드사는 설명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리볼빙을 '최소 결제', '일부 결제' 등으로 표기한 것도 화면이 작아 글자를 모두 넣기 어려워서였을 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 후엔 정식 명칭과 금리 등을 제대로 기재했다고 설명한다. 리볼빙 약관 동의를 유도한 것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약관에 동의한다고 해서 바로 리볼빙이 신청되는 건 아니어서다. 리볼빙을 신청하려면 다시 별도의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리볼빙은 약정을 먼저 해두고 그 다음 이용하는 구조인데 카드사가 약정할 때 권유를 과다하게 하는 경우는 아직도 흔하게 있다"며 "그러나 지난해 8월 이후 커피 쿠폰을 주는 식의 마케팅은 다들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약정 단계에선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 있고 리볼빙 신청 단계에선 설명 의무가 따른다"고 덧붙였다.

리볼빙 잔액만 7.6조···어려운 서민, 리볼빙까지 활용
③9월 7.61조 최대, 올해만 1.1조원 증가

"연체 안돼요" 카드값 미뤘다가…마통 2배 금리 '화들짝'
10월 들어 한 풀 꺾였지만 최근 수 개월간 카드사 리볼빙 잔액 증가세는 관련 공시가 시작된 2021년 이후 3년만의 최대치였다. 고신용자의 이용이 늘고 있긴 하지만 리볼빙은 여전히 생계형 대출성 상품이다. 그만큼 서민 경제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부에선 카드사들이 서민 부담을 이익 창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 9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BC·우리·하나·NH농협카드)의 지난 10월 기준 리볼빙 잔액은 7조582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카드사들의 리볼빙 잔액은 6조2269억원 수준이었다. 올해 1월 7조3666억원으로 18.3%인 1조1397억원이 넘게 늘었고, 지난 9월 7조6126억원으로 잔액 기준 최대치를 찍었다.

추석과 맞물린 소비 증가가 9월 리볼빙 잔액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8월 잔액은 7조4864억원이었다. 한 달 만에 1262억원이 증가한 셈이다. 10월 들어 잔액이 303억원 줄긴 했지만 증가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상위권 카드사들의 리볼빙 잔액 증가가 전체 업계 흐름을 이끌었다. 신한카드가 지난해말 대비 1104억원, 삼성카드사 1067억원, KB국민카드가 1195억원 늘었다. 롯데카드도 1135억원 증가했다. 상위권 카드사 중 현대카드는 리볼빙 잔액이 같은 기간 감소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 중 일부를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을 수 있게 한 서비스다. 최근 들어 고신용자 이용이 늘고 있긴 해도 카드 대금을 쪼개서 내야 할 만큼 어려운 서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최근의 리볼빙 잔액 확대는 그만큼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이 업황 악화로 대출을 축소하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비교적 이용이 간편한 리볼빙으로 수요가 몰린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카드사들이 리볼빙 어려운 서민 경제를 이용해 리볼빙 영업에 힘을 쏟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리볼빙은 카드사 대표 대출 상품인 카드론보다도 금리가 높다. 고객이 리볼빙을 이용하는 만큼 고액의 이자가 그대로 이익으로 쌓이게 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리볼빙은 금리가 높아 한 번 연체하기 시작하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위험이 있다"며 "이용자 다수가 취약 채무자일 확률이 높은 만큼 적극적인 영업까지 카드사들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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