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후 원자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크게 공헌했다. 값싸고 질 좋은 전기는 국가 경제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요금으로 전기를 풍족하게 쓸 수 있었다. 우리 국민 모두 원자력으로부터 직·간접적 혜택을 받았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 해결을 후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세대에서 풀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실마리라도 줘야 한다. 원자력발전사업자는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1다발당 3억2000만원, 중수로 사용후핵연료 1다발당 1300만원가량을 사용후핵연료 관리 재원으로 적립하고 관리·처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재원과 기술개발은 후손에게 버거운 짐을 맡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 결정적 실마리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다.
수십 년간 연구로 사용후핵연료를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핀란드·스웨덴·프랑스는 국민과 지역주민의 합의에 기반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를 확보했다. △핀란드는 2025년 △스웨덴은 2035년 △프랑스는 2040년대 운영을 목표로 처분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부지를 찾을 차례다. 과거 9차례나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려다 실패했다. 지역사회와 주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과학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주민 동의 기반하에 처분장 부지를 정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에 담았다. 이 특별법이 제정돼야 본격적인 부지 확보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그런데 여야 정쟁의 대상이 돼 특별법이 국회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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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은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국민이 원전 지역주민에게 더 이상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우리가 그리고 국민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약속과 진배없다. 그 엄중한 약속이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여야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