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KB손해보험전 승리 후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한항공 유광우(왼쪽)와 정한용. /사진=안호근 기자
인천 대한항공 베테랑 세터 유광우(38)의 말이다. 핵심 선수들이 없이도 대한항공의 날개가 꺾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비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돼 활약한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과 미들블로커 김민재는 아직 코트에 복귀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핵심 아웃사이드 히터 곽승석도 결장했다. 그럼에도 2연패의 대한항공은 결국 승리 방정식을 찾아냈다.
3연패, 토미 틸리카이넨(36) 감독 선임 후에 2연패를 달성한 대한항공이다. 그들의 비상을 막을 팀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왼쪽)이 경기 중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KOVO
개막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셧아웃시켰으나 이후 대전 삼성화재, 서울 우리카드를 만나 연이어 풀세트 경기를 치렀고 연이어 패배를 당했다. 위기의식을 가진 채 홈에서 KB손해보험을 만났다. 상대 또한 오심 피해로 인해 2연패에 빠지며 승리가 간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 틸리카이넨 감독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우리 플레이를 어떻게 잘 할지다.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감은 본인이 뭘 할 줄 아는가에서 온다. 우리 선수들은 본인이 어떻게 해야할 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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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트를 따내며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2세트를 내줬고 3세트를 따내고도 다시 4세트를 잃었다. 범실이 9개나 쏟아졌다.
그러나 3번 연속 실패는 없었다. 3년 차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이 개인 한 경기 최다인 29점을 폭발시키며 날아올랐고 경기 중반 투입된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24)이 17점을 올리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백전노장 세터 한선수(38)와 유광우는 영리하게 후배들의 공격을 이끌었다.
득점 후 함께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KOVO
정한용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사령탑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록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여러 부분에서 성장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이고 잠재력이 많다. 아직도 많이 성장할 수 있다"며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려면 힘든 상황, 좋은 상황할 것 없이 많은 경험을 겪어야 한다. 그런 토대로 성장할 수 있다. 오늘 들어간 젊은 선수들이 본인들 역할 제대로 발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한용 뿐이 아니다. 주축들이 없어도 대한항공은 생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가는 팀이다. 이날 14명을 활용했고 4명이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처음 선발 출전한 마크 에스페호도 8점으로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누가 나오더라도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즌 전 열린 컵대회 땐 기존 전력에서 9명 없이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틸리카이넨 감독의 모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상황에 맞게끔 대회를 치르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럴 자신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격을 위해 높게 도약하는 정한용. /사진=KOVO
정한용이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틸리카이넨 감독은 "주전이 아닌 선수들이 갑자기 들어와 잘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동의한다"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는 도와주지만 선수들이 이미 동기부여가 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환경에 선수들이 잘 적응한 덕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수들에게 그런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훈련 때부터 실제 경기처럼하고 거기서 선수들이 훈련이 되고 경험이 되기에 (갑자기 나와) 경기에 실제로 뛸 때에도 이질감이나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며 "선수들도 알테지만 모든 게 공평할 수는 없다. 기회의 차이가 다를 수 있는데 그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틸리카이넨 감독이다. 정한용은 "중요할 때 (토스가) 올라오면 부담은 되지만 토미 감독은 그런 걸 이겨내야 한다고 말해준다. 실수해도 과감히 때려본다"며 "항상 경기에 뛰고 싶었다. 형들이 아픈 건 팀이나 형들에겐 안 좋은 일이지만 내겐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걸 잡고 싶고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임동혁(오른쪽)에게 토스를 올리는 유광우. /사진=KOVO
선수들 스스로도 승리를 위한 정신무장이 잘 돼 있다. 유광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즌 전체를 볼 때 지는 게 한 번, 두 번, 세 번 되면 습관이 되니 어떻게든 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선수들도 그걸 인지하고 승부처서 집중해서 좋은 결과가 됐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 틸리카이넨 감독은 주축 선수들이 없는 가운데서도 감독이 역할을 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가, 감독으로서 할 일이 많다. 전술적으로도 더 득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경기를 위해 선수들 몸 관리 시키고 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며 "우리가 훈련을 어떻게 진행하고 계획하는지도 포함된다. 분위기는 너무 좋다.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내 역할이기도 하지만 선수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사령탑은 경기 전 자신이 강조한 역할을 결과를 통해 톡톡히 보여줬다. 올 시즌 2승 2패로 3위지만 안 좋은 분위기를 확실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틸리카이넨의 대한항공은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잘되는 집안은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해냈다.
득점 후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KO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