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고도 살아났는데…몸 마비되더니 '어버버', 레닌 쓰러뜨린 뇌경색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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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권력자의 건강 이야기 ④레닌의 뇌경색

편집자주 무소불위의 독재자부터 영향력 있는 지도자까지 세계사의 주요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은 세상을 평정한 '권력자들'이었다. 견고한 성(城)처럼 보인 그들의 권력은 다름 아닌 '질병'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처럼 제아무리 힘 있는 권력자도 건강을 잃으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법. 근·현대사에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권력을 내려놓기까지의 건강 이야기를 연속해서 탐독한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국가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자유가 있으면 국가는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공산주의이다."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혁명가로 활동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년, 이하 레닌)이 생전에 한 말이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레닌주의 이념을 창시한 그는 레닌은 오랜 기간 망명과 박해,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17년 10월 혁명으로 마침내 권력을 잡았다. 그는 러시아 임시정부 국가 원수,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가 원수, 소비에트 연방 국가 원수로 재임한 1917~1923년의 6년간 이른바 '레닌 시대'를 펼치며 최고 권력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기간, 총살당하거나 잔병치레를 겪으면서 그의 권력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에 처해 있었다.

그가 권력을 잡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1918년 8월 30일, 레닌이 모스크바의 한 공장에서 연설을 마치고 차에 오를 무렵이었다. 한 여성이 소리치며 레닌을 불렀고, 그가 고개를 돌리자 "탕! 탕! 탕!" 총성 세 발이 울려 퍼졌다. 레닌의 왼쪽 어깨와 턱에 한 발씩 박혔고, 남은 한 발은 옷을 스치며 지나갔다. 레닌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범인은 레닌만큼 사회주의와 혁명에 투철한 혁명가로, 사회주의 활동을 펼치다 16살에 시베리아 유형지에 끌려가 11년간 고초를 겪은 28살의 여성, 파니 예피모브나 카플란(이하, 카플란)이었다. 농민 중심의 사회혁명당원이던 카플란에게 레닌은 '의회를 해산시켜 독재하는, 권력에 눈이 멀어 혁명을 버린 배신자'였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언론은 레닌을 향해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힘의 보호를 받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총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으며 권력을 다진 것이다. 이후 곳곳에 레닌의 초상화가 그려졌고, 레닌은 총을 맞고도 살아난 '혁명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러시아 국기의 날'인 22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 앞에 모여 대형 삼색기를 펼치고 있다. 러시아 삼색기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 러시아의 공식 국기가 되었고 1994년 러시아 국기의 날이 제정됐다. 2023.08.23.[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러시아 국기의 날'인 22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 앞에 모여 대형 삼색기를 펼치고 있다. 러시아 삼색기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 러시아의 공식 국기가 되었고 1994년 러시아 국기의 날이 제정됐다. 2023.08.23.
총상 이후 레닌은 총상 후유증과 누적된 과로로 몸져눕기 일쑤였다. 그는 극심한 두통·피로에 시달렸다. 장기간 휴가를 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두통·불면증이 멈추지 않았다. 의사들은 카플란이 쏜 총알 때문에 생긴 '납 중독'이라 진단하고, 수술로 그의 목에 박힌 총알을 빼냈다. 수술 후 그의 두통은 씻은 듯 나아 보였지만 수술 한 달 후인 1922년 5월 25일, 그의 왼쪽 뇌혈관이 막히는 급성 뇌경색이 발생했다. 그의 나이는 만 52세였다. 갑자기 오른쪽 몸이 마비되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뇌혈관이 막히는 급성 뇌경색이었다. 왼쪽 뇌는 오른쪽 몸을, 오른쪽 뇌는 왼쪽 몸을 관장한다. 왼쪽 뇌혈관이 막힌 그의 오른쪽 몸이 마비된 이유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52세였다.


그해 9월경 레닌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하자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 발병했다는 건, 다른 혈관도 막힐 수 있다는 상태를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12월 15일 레닌은 두 번째 뇌경색으로 또다시 쓰러졌다. 마비 증상은 전보다 더 심해졌다.

스탈린은 레닌이 자신에게 준 서기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의사·간병인을 단속하고 방문객까지 철저히 통제했다. 1923년 3월 7일, 세 번째 뇌경색이 찾아왔다. 이번엔 오른쪽 몸뿐 아니라 혀까지 마비됐다. 이후 사망까지의 투병 기간은 10개월. 이 기간 레닌에겐 언어 장애와 실어증까지 찾아왔다. "여기-여기", "집회-집회"처럼 단음절로 된 낱말만 발음할 수 있었다. 결국 1924년 1월 21일 저녁 그는 숨을 거뒀다.

그의 목숨과 권력을 앗아간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의 일부가 손상당하는 질환이다. 목에 있는 경동맥, 척추-기저동맥부터 뇌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지름의 동맥까지 어떤 혈관이든 막힐 수 있다. 이에 따라 혈관이 지배하던 부위의 뇌가 썩어 증상이 계속 남는다.

뇌경색은 과로·스트레스·피로·흡연·불면·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비만·유전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한다. 레닌은 20대부터 유배와 망명 생활로 인한 영양결핍을 앓았고, 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 극심한 과로가 겹쳤다. 거기다 그가 가진 유전적 요인도 뇌경색 발병 위험을 높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레닌의 아버지는 55세에 뇌혈관 질환으로 급사했는데, 이는 레닌이 뇌 질환에 대한 유전력을 갖고 있었다는 근거다.

1922년 당시엔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는 물론 뇌경색 치료제도 없었다.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건 휴식을 권고하는 게 전부였다. 현대의학에서 뇌경색의 골든타임은 3시간(최대 6시간)이다. 그 안에 치료를 시작하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뇌경색의 증상은 혈관이 막힌 혈관의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신불수, 언어 장애, 시야 장애, 어지럼증, 의식 소실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뇌혈관이 막혀 뇌 혈류가 차단되면 불과 몇 시간 내에 뇌 조직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생기다. 따라서 수 시간 이내에 막힌 뇌혈관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을 녹여 뇌 혈류를 재개통해야 한다. 치료가 잘 되면 증상은 즉시 호전되며, 수일 이내에는 완전히 회복된다. 뇌경색 땐 동맥경화 상태의 혈관 벽에 혈전(피떡)이 생기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항혈소판제제를 투여해야 한다.

뇌동맥이 심하게 좁아진 경우 약물 요법만으로 뇌졸중 재발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뇌동맥의 협착 정도·양상, 기타 환자 조건에 따라 좁아진 혈관을 넓혀 주는 스텐트 삽입술, 동맥경화 자체를 없애 주는 경동맥 내막 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Tip. 뇌졸중을 막는 11가지 생활 수칙
① 혈압을 조절해라
② 담배를 피우지 말아라
③ 적당한 체중을 유지해라
④ 더 활동적으로 생활해라
⑤ 꾸준히 심방세동을 확인하고 관리해라
⑥ 일과성 뇌 허혈 발작이 일어났을 때 더욱더 치료에 주의를 기울여라
⑦ 빈혈과 같은 혈액순환 문제를 관리해라
⑧ 당과 콜레스테롤을 관리해라
⑨ 술을 조금만 마셔라
⑩ 저염분·고칼륨 식사 습관을 지녀라
⑪ 뇌졸중의 경고 증상에 주의해라

자료=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참고 서적=『히틀러의 주치의들』(드러커마인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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