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가 견뎌야 할 '왕관의 무게'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8.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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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늘어난 비중이 일으키는 '나비효과'

'D.P.' 시즌2, 사진=넷플릭스'D.P.' 시즌2, 사진=넷플릭스


"이게 다 손석구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D.P.2’(감독 한준희)가 공개된 후,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장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지난해 방송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이후 ‘추앙’하게 된 손석구(씨)를 보기 위해 ‘D.P.2’ 공개를 오매불망 기다린 이는, 비단 이 지인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시즌1 때만큼 울림과 재미는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들었다고 푸념했다.

‘D.P.2’는 시즌1과 분명 틀이 달라졌다. 이 작품은 군무이탈체포조 역할을 하는 두 젊은 남자의 이야기였다. 징병제로 끌려간 군대 내 부조리를 체감하면서도, 그 부조리를 견디지 못해 탈영한 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청춘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손석구가 시즌1에서 연기한 임지섭 대위는 진급 외에는 딱히 바라는 것도, 타인에 대한 정(情)도 없고, 평균을 살짝 넘는 권위 의식을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화법으로 어느 군대에나 있을 법한 하이퍼리얼리즘에 기댄 캐릭터를 말끔하게 소화하며 적은 출연 분량에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D.P.2’에서 임지섭 대위, 즉 손석구는 실질적 주인공급으로 도약했다. 그와 박범구 중사(김성균 분)의 역할이 커진 반면, 기존 주인공이었던 안준호(정해인 분), 한호열(구교환 분)의 분량은 다소 축소됐다.

물론 이는 감독과 작가의 노림수였다. 시즌1은 탈영병의 자살 시도라는 충격적 결말로 매듭지어졌다. 이후 모두가 정신적 충격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군대는 바뀌었나?"라고 자문하게 된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병사 간 부조리가 아니라, 군대의 시스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힘을 가진 ‘방관자’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웅변이다. 이는 병사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간부들의 목소리와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임지섭 대위 등이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임지섭 대위의 역할이 커진 ‘D.P.2’는 매력적인가? 정답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호불호’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즌1이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온도다. 안준호, 한호열에서 이야기의 중심축이 옮겨지며 기존 팬들은 이질감을 느꼈다. 게다가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오며 전복된 임지섭 대위의 캐릭터도 낯설다. 물론 탈영병의 자살 시도라는 충격적 사건을 겪기도 했지만, 임지섭 대위와 같이 원하는 곳만 보고 나른한 삶을 살던 이가 의식을 가진 참군인으로 거듭난다는 설정은 비약이 심하다고 느껴진다. 원래 사람은 잘 안 변하는 법인 탓이다.

사진=스타뉴스DB사진=스타뉴스DB
항간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나의 해방일지’가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손석구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집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는 억울한 오해다. ‘D.P.2’의 시나리오는 ‘나의 해방일지’가 방송되기 전 이미 완성됐다. 임지섭 대위를 중심으로 ‘D.P.2’가 새판을 짠 것과 손석구가 스타덤에 오른 상황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이 시점, 손석구의 인기가 워낙 높은 터라 받게 되는 왜곡된 시선이라는 의미다.

손석구가 ‘대세’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새삼 확인됐다. 그는 얼마 전 연극 ‘나무 위의 군대’의 간담회에서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는데 마이크를 붙여주든지 해야지, ‘가짜 연기’를 왜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됐다"면서 "그래서 그만두고 영화 쪽으로 갔다. 다시 연극을 하면서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도 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선배인 남명렬은 손석구의 경솔한 발언을 지적하며 "하하하, 그저 웃는다. 그 오만함이란"이라고 일갈했다. 얼마 후 원로배우 이순재 역시 한 매체를 통해 "최근 누가 ‘가짜 연기’라는 말로 논란이 됐다"고 언급하며 "연기라는 게 원래 가짜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게 연기"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해내지 못한 영역을 ‘가짜’라 칭한 손석구를 향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사진='JTBC '뉴스룸' 방송 영상 캡처사진='JTBC '뉴스룸' 방송 영상 캡처
이에 손석구는 고개 숙였다. 지난달 23일 JTBC 뉴스에 출연해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10여년 전 간혹 한 가지의 정형화된 연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나의 옹졸함과 고집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면서 "너무 하나의 예시와 평소 배우 친구들과 쉽게 내뱉는 ‘왜 이렇게 가짜 연기를 하냐’ 이런 것들이 섞이면서 오해를 살 만한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또한 "(남명렬) 선배님께 손 편지를 써서 사과했다"며 "선배님도 보시고 제 마음을 알아주시고 답장도 주셨다. 연극도 보러 오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잡음이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는 과정 역시 무난했다.

하지만 손석구가 불러일으킨 '가짜연기' 논란을 전하는 몇몇 언론매체의 행태는 아쉬움이 남는다. 베테랑 남명렬의 따끔한 지적을 ‘오만함’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사과한 손석구를 ‘추앙’한다는 식의 낯간지로운 찬사도 등장했다. 일련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이 ‘손석구 때문’이다. 그의 인기가 그만큼 높다는, 뜨겁다는 방증이다. 그렇기에 그는 더 신중해야 하고, 또 진중해야 한다. 뻔한 표현이지만, 그것이 바로 스타로서 그가 견뎌야 하고 버텨야 하는 ‘왕관의 무게’다.



또한 손석구가 중심부로 들어간 ‘D.P.2’에 대해서도, 팬심을 뒤로 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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